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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Aug 21. 2017

맨날 야근하던 그분 맞나요?

우리 회사가 달라졌어요

 퇴근하고 신랑과 마주한 저녁. 신랑이 자기네 회사 인턴 고민 좀 들어보라며 말을 꺼냈다. 아니, 우리 가족의 앞날을 고민해도 모자랄 시간에 누구 고민을 들어달라는 거야!라고 말하려는 찰나,

 "당신 회사 공채 최종 합격했데. 그리고 우리 회사 정규채용도 확정돼서 고민하더라고."

 와.. 회사 2개를 골라 가는 이 능력자는 뭐지? 행복한 고민이지만, 정말 고민되겠다.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다양하다. 직무, 연봉, 위치, 복지, 근무환경 등. 무엇보다 자신과 잘 맞는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일해보지 않고서 나와 잘 맞는지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그 인턴의 고민을 우리 팀 선배들에게도 얘기했다.

 "그게 뭘 고민할 일이야! 당연히 여기 오면 안 되지!"

 진심과 농담이 섞인 선배 말에 한바탕 웃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우리 회사도 자랑할만한 일이 생겼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길 바라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 육아휴직 후 1년 만에 돌아오니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1. 책상에 붙은 빨간딱지 _출퇴근 유연근무제

 육아휴직이 끝나갈 즈음, 복직 면담을 위해 회사에 왔다. 팀장님 면담을 마치고 오랜만에 팀분들을 보기 위해 사무실로 올라왔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개별 책상의 명패 위에 붙은 빨간딱지. 각자의 출근시간을 표시하는 팻말이다. 8시 출근 5시 퇴근부터, 10시 출근 7시 퇴근까지 다양한 시간대가 써져있었다. 한번 정한 출퇴근 시간은 한 달 동안 이어지며, 매달 근무시간 계획을 제출하면 된단다.

 10시 출근이라니! 남들 지하철 타는 시간에 일어나도 된다니!



2. 매일 야근하던 그분 맞나요? _PC-OFF 제도

 퇴근하면서 옆 팀을 지나갈 때마다 그 사람이 보인다. 거의 마지막에 퇴근하는 사람. 방송 직무가 아닌데도 자주 남아있는 그 사람. 옆 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업무량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다. 옆 팀 팀장님이 야근을 강요하는 스타일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다른 분들은 퇴근을 잘만 한다.  

 팀 전원이 같은 시간에 우르르 퇴근하는 풍경. 회식하러 가는 날 말고는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5시 40분만 되면 5시 반 퇴근자들로 엘리베이터가 꽉 찬다. 바로 8월부터 도입된 PC-OFF제도 때문이다. 정시 퇴근을 장려하여 회사 컴퓨터가 퇴근 시간에 맞게 꺼지게 된다. 이로 인해 나의 의지가 아닌, 팀장님의 권유가 아닌, 나는 늦게까지 일하고 싶으나, 컴퓨터가 꺼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칼퇴를 해야 하는 아름다운 현상이 벌어진다.

 5시 40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 중에는 옆팀 야근남도 껴있었다.


3.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_ 자녀 입학 돌봄 휴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적어도 3명의 어른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의 배려가 필요하다.  워킹맘들의 가장 큰 위기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이라고 한다. 아이의 첫 학교생활을 위해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이야기다. 그런 엄마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왔다. '자녀 입학 돌봄 휴가' 최대 1달까지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생겼다. 그 외에도 '긴급 자녀 돌봄 근로시간 단축' 하루 2시간 단축, '남성 출산휴가' 유급 2주까지 사용할 수 있어 워킹맘 워킹대디의 부담이 조금은 해소된 느낌이다.

 "우리 딸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한 달 휴가 쓰고 놀러 다니면... 안 되겠지?"

 자녀 돌보랬더니 본인 돌볼 생각만 하냐며 과장님은 팀원들에게 잔소리만 한 바가지 들었다고 한다.


4. 동기의 비밀결혼설_ 창의 휴가

 라이브 방송에서 종종 마주치던 동기 한 명이 웬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복직한 지 2주가 되었고 그동안 이틀에 한 번씩은 방송에 따라다녔지만, 그 동기는 오랫동안 회사에 없는 듯했다. 회사 메신저는 오프라인 상태, 카톡은 확인도 안 하는 듯하고 다른 동기들조차 그의 소식은 듣지 못하였다 한다.

 '직장인이 이렇게 잠수 타도 되는 거야?'

 '비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이라도 간 거야 뭐야..'

동기들 사이에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 시작할 즈음, 점심시간 1층 카페에서 팀원들과 커피를 마시는 그를 발견했다. 한걸음에 달려가 취조했다.

"뭐야! 도대체 뭐하다 출근한 거야?"

"나 2주 휴가 내고 유럽 여행 다녀왔지. 창의 휴가 그거 썼어."

 나도 휴직 중에 그 메일을 받았다. <5년 근무. 창의 휴가 대상자입니다>. 기분은 좋았지만 2주 휴가를 누가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을까. 써봤자 3일, 5일 나눠서 쓰게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 휴가를 쓴 인물이 바로 내 눈 앞에 있다니! 유급 2주, 무급 2주로 최대 한 달까지 쓸 수 있다고 하니,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나?


5. 회사에 놀러 오셨어요? _복장 자율화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하던 날. 서로 농담도 하는 친한 선배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바로 카톡을 보냈다. '선배님,  청바지에 티 입고 출근해도 되는 겁니까? 회사에 놀러 오셨나요?'  

 입을 옷이 없다는 것. 여자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고민이다. 빼곡한 옷장을 바라보며 입을 옷이 없어 아침마다 심란하다. 그런 중 반가운 소식 하나. 청바지, 티셔츠, 운동화 가능하게 되었다. 원래도 복장이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더욱 자유로워졌다! 이 정도면 입을 옷이 없어 고민하는 날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줄어들 것이다.

 "여보 이번 주말은 옷 사러 가자."

 "회사에 티랑 청바지도 입을 수 있다며. 왜 또 옷을사?"

 "아.. 회사에 입고 갈 만한 티랑 청바지 사려고~"

 여자들의 옷에 대한 고민은 어떤 제도로도 사라질 수 없나 보다.




 신랑네 회사 인턴은 결국 우리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수 있다. 누구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거니까. 그런데 신랑한테 진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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