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심심해진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두근두근
설레어서 잠이 안 온다. 결혼한 지 4년이 되었는데도 이렇게 설렐 수 있을까. 손목을 확 잡아끌어 껴안는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맞다. 바로 드라마다. 이제 진정한 한국 아줌마가 되었다 해도 부정할 수 없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신랑을 불렀다.
"여보,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 대신 높은 선반 위에서 그릇을 꺼내 주던데, 당신도 한번 해봐."
신랑은 한심한 눈길을 보내면서도 시키면 다 들어준다. 귀여운 신랑.
운전하던 신랑한테 말했다.
"여보, 남자 주인공이 운전하다가 위험한 상황에서 여주인공을 팔로 막아주던데, 나한테 한번 해봐."
드라마에 빠져 미쳤냐며 궁시렁 거리더니, '이렇게?'하며 팔로 내 몸을 감싼다. 하여튼 귀엽다니까.
결혼은 곧 연애의 끝이다. 더 이상 짝사랑도 못한다. 썸도 못 탄다. 소개팅은 물론, 고백이란 단어는 영영 끝이 나는 거다. 실제로 이런 생각 때문에 결혼이 하기 싫다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결혼하고 여전히 설레?"
미혼인 친구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설레긴 무슨. 가족이자 친구이자 전우 같은 느낌이지. 와인 두 잔을 비우니 술기운이 올라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설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저 남자가 읽고 있는 책이 뭘까?'
대학시절 내가 남자에게 끌렸던 건 공부하는 모습이나, 책 읽는 모습이었다. 내가 공부에 취미가 없었으니 공부 잘하는 남자는 멋있고 잘생겨 보였다. 그런데 그 남자와 연애하고 보니 설레는 감정은 길지 않았다. 과외 오빠처럼 멋지긴 했지만, 나에겐 딱 문제집 같은 남자였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사람이 아닌, 문제 풀이처럼 지나가는 사람 말이다.
두 번째로 설렘이라 착각한 사람은 연예인처럼 잘생긴 남자였다. 외모만 봐도 두근거리고,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홀한 미모였다. 주위에서 남자 친구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하나면 그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탄하는 친구들을 보고 우쭐거렸다. 하지만 그 설렘은 더 짧았다. 이기적이었던 사람. 그 남자는 이기적인 외모만큼이나 배려심이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몇 번의 짧은 설렘을 거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연애 때부터 신랑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참 '한심'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좋았다. 이게 무슨 변태 같은 취향일까 싶지만, 과격하게 말하면 '한심하게', 좋게 말하면 '귀엽게' 바라봐 주었다. 똑똑한 남자 앞에선 똑똑한 척. 잘생긴 남자 앞에선 이쁜 척을 해야 했는데, 나를 바라보는 이 남자 앞에서는 마음껏 나로 있을 수 있었다. 내가 뭘 하던 귀엽게 (한심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 그 눈빛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이건 자아도취의 또 다른 유형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사람이 좋아서 좋은 것 보다도, 그 사람의 눈에 비친 내가 더 좋아진 느낌이랄까. 나르시시즘. 결국엔 나 자신에게 설레게 되는 거라고 말하면 너무 억지인 걸까?
신랑이 그렇게 바라볼 때마다 나는 더 한심하고, 더 철이 없고, 더 그 사람을 웃기고 싶어 진다. 그럴 때마다 너무도 예측 가능하게 웃음보가 터지는 신랑을 보면 나는 개그맨이 된 듯 뿌듯했다.
말하고 싶은 요지는 이거다. 세상에 설렘이 남아있고, 처음 만난 듯 두근거리는 부부는 없다. 다만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설렘이 다했다고 해서 무관심을 사이에 두진 말자. 끊임없이 한심한 행동을 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웃겨주면 그 사람은 나를 바라봐줄 것이다. 그 눈빛만큼은, 우리 사이가 얼마나 오래되었든 간에, 나를 떨리게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