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어느 날. 회사에서 친한 언니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30대 초반 예쁘고, 자신감 있고, 능력도 좋은 회사 선배 언니가 말했다.
“나 끝냈어.”
엥? 시작한 줄도 몰랐는데 끝났다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작도 안 하고 끝이 난 게 맞았다. 먼저 다가갔던 건 언니. 마음을 표현한 것도 언니. 그러다가 지쳐서 그만 끝낸 것도 언니였다. 너무 바빴던 그 남자는 적극적이었던 언니의 사랑만 한껏 받다가, 언니가 떠나고 나서야 매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떠나버린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언니는 마음껏 사랑하고, 표현했기에 후회 없다고 했다.
C양은 내가 아는 사람을 통틀어 남자를 가장 많이 만나본 친구이다. 남자를 많이 만났다고 해서 이 남자, 저 남자 갈아치우는 나쁜 여자는 아니다. 오히려 착해서 탈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헌신적이다.
"오늘은 맛있는 것 좀 얻어먹었어?"
남자 친구든, 썸남이든 식사 비용은 꼭 자기가 계산하는 C양. 테이블 위의 계산서만 보면 손이 먼저 닿아, 계산대로 향하게 된다는 C 양이다. 이건 일종의 병인 게 분명하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했다.
"내가 좋아서 그러는 건데, 돈이야 내가 다 내면 뭐 어때?"
데이트 비용은 한 가지 예일 뿐이었고, 그녀는 모든 면에서 헌신적이다. 그리고 열정적이다. 뜻뜨미지근한 연애는 해본 적이 없다. C양은 늘 후회 없이 사랑한다.
지금 당신의 연애가 권태롭다면 헤어져도 좋다. 이별에는 그마다의 사정 있고, 이유가 있다. 헤어짐을 마음먹은 당신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당신 옆에 있는 이 남자 (여자)가 시시해졌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지려 한다면,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며 다른 사람 곁에서 더 빛날지도 모른다는, 아니 분명히 더 빛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베푸는 호의와 사랑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누군가의 마음을 쉽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이 우습게 생각한 그 마음이 떠나가는 순간, 그의 다정함, 애정 어린 시선, 유쾌한 날들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늘 지나간 사랑에 대해 후회할 뿐이다.
반대로 헌신적인 당신을 떠난 그(그녀)를 후회 없을 만큼 붙잡아보았다면, (어차피 잡히지도 않을 거) 그냥 그쯤에서 돌아서도 괜찮다. 내가 상대방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만큼 중요한 건, 똑같이 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오히려 후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다른 누군가의 옆에서도 반짝이는 것처럼, 상대방도 어딜 가나 빛나는 사람이다. 그런 서로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끼리 만나 후회 없이 사랑했으면 한다.
늘 헌신적으로 사랑한 C양은 오래오래 사랑받았을까? 슬프게도 열 번의 연애 중 아홉 번은 차였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C양에겐 특별한 점이 있다. 연애할 땐 쏟아부어도, 끝나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보는 C양.. 그녀를 떠난 아홉 중 아홉은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꼭 늦은 새벽 밤에. “자니?"라는 메시지로 말이다.
차이면 지고, 내가 먼저 차면 이기는 걸까?
누가 먼저 끝내느냐는 상관없다. 그저 후회 없이 사랑한 쪽이 이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