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현 Oct 08. 2018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홈쇼핑 론칭 이야기


두근두근

드라마 볼 때 빼곤 떨리는 일이 없는 심장이 (여보 미안^^)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다음에 들어갈게요. 대기해주세요.”

병원에서 피 뽑는 순서 기다리는 마냥, 취직할 때 면접 순서 기다리는 마냥,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거리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이나 다른 회사에 가서 들은 대사는 아니다. 이미 몸 담고 있는 우리 회사 <편성 상황실> 앞에서의 일이다.


론칭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 바로 신상품 발표다. 팀 발표에 이어 두 번째 하는 PT인데도 긴장되는 이유는 이번에 하는 발표는 전사 앞에서 하는 발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사 발표라고 해서 직원 100명, 200명 모아놓고 하는 발표는 아니다. 다양한 상품팀의 팀장님들, 부팀장들, 피디 대표, 쇼호스트 대표, 편성 팀장님을 비롯한 편성 담당자들이 메인 패널이며, 각 상품의 심의, 품질, 마케팅 담당들이 그 자리에 함께한다. 발표를 앞두고 이토록 긴장되는 이유는 관객이 많고 적음을 떠나, 발표 후에 쏟아지는 날카로운 질문들 때문이다. 1 대 다(多)로 펼치는 핑퐁게임처럼 수많은 방향에서 날아오는 공들을 받아쳐내려면 공부할 수밖에 없다.

‘경쟁 제품 대비 차별점이 없는 거 같은데 어떻게 극복할 거예요?’

‘가격이 많이 비싼듯한데 잘 팔릴까요?’

특별한 질문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날카로운 질문에 ‘어버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날이면 그 날 밤은 자다가도 이불 킥만 수십 번이다.


두근두근

신상품 발표가 끝났다는 해방감도 잠시, 오래 지나지 않아 심장은 또다시 쿵쿵거린다. 편성 잡히기가 무섭게 피디 캐스팅, 쇼호스트 캐스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빠른 시일 안에 첫 론칭 미팅이 잡힌다.

“안녕하세요 론칭 미팅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친구들과 셋이 대화할 때도 발언권 가져가기가 어려운데, 피디 쇼호스트 협력사까지 적으면 6명, 많으면 10명까지도 참석하는 미팅을 적절히 목소리를 내며 이끌어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방송이면 방송, 상품이면 상품, 업계에서 모두 전문가들로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미팅이니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한 주제로 시간이 너무 많이 끌게 되면 끊어주는 역할도, 혼선이 있는 내용을 정리하는 역할도, 방송인력과 협력사간 의견이 다르다면 조율하는 역할도 MD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팅이 깔끔하게 정리되면 성취감도 그만큼 크다. 하지만 뭔가 진행이 매끄럽지 않을 때는 찝찝한 기분이며, 그게 내 탓인 것만 같을 땐 그날도 역시 자다가 이불 킥이 날아간다.

신상품 발표부터 론칭 미팅까지. 허공에 날린 발차기만 몇십 번인지... 이젠 셀 수조차 없다.


두근두근

론칭날이 밝았다. 이날은 뭔가, 목구멍에 음식 한 조각이 ‘턱’ 걸린듯한 느낌으로 온종일 속이 좋지 않다. 방송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만큼 몸은 편하지만, 어쩐지 마음은 자꾸 조급하다. 60분이라는 시간 동안 매출, 이익, 고객의 반응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집계된다. 단 60분 동안 말이다.

’On Air’ 불이 들어왔다.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면서도 심장이 벌렁거려 꼭 후반전까지 끝난 뒤 하이라이트만 봐왔는데, 내가 직접 뛰는 이 경기에선 60분 동안의 희열도, 위기도 다 받아내야 한다. 방송 전방에서 고객들을 끊임없이 유입시키며 현장감을 더 생생하게 느끼는 우리 피디, 쇼호스트와 함께 말이다. 60분 후면 내가 웃고 있을지 울고 있을지.. 그 시간을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날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론칭 빨’이라는 것도 작용한다. 하지만 이 론칭빨이라는 것도 상품이 기본적인 경쟁력을 가졌을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잘되는 상품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특별히 론칭날이 아니더라도 ‘모든 날’ 잘 팔린다!


세 번의 두근거림을 거쳐 상품 하나를 론칭하고, 이러한 추억(또는 고생)으로 그 상품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론칭할 때의 긴장감은 마치 설렘과 두려움 사이에서 시소를 타는 기분이다. 분명한 건 내가 잘 준비되고, 잘 해냈을 때는 설렘에 더 가까운 기분, 반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더 가까워진다. 그 시소가 설렘에 기울어지는 날도, 두려움에 기울어지는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쪽에서든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이유에서 ‘모든 날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길 바라본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일 것 같다. 하고 있는 일이 힘들지만, 그 힘든 와중에 한 번씩 찾아오는 성취감, 효능감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 아닐까?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MD를 하고 있는 이유가(사실은 월급날이 가장 설렌다^^) 그 때문일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 없이 사랑한 쪽이 이기는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