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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Aug 07. 2015

정체불명의 콜택시

심야방송 후

카카오 택시가 생기기 전엔 그냥 일반 콜택시 회사를 이용했다. 실시간 위치추적도 쉽지 않았고, 배차 후엔 기사님 전화 한 통으로 대충 눈치껏 언제 도착하는지 가늠했다.


그 날은 심야방송이 있어 새벽 3시에 퇴근했다. 홈쇼핑은 하루 24시간 중 4시간을 제외하고 전부 생방송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벽 3시는 그닥 낯설지 않은 퇴근 시간이다. 마지막 방송(통상 '막방'이라고 부른다.) 시간은 새벽 1시. 2시에 방송이 끝나서 사후미팅과 결과보고 메일까지 쓰면 시간은 새벽 3시에 가까워진다.


방송을 끝내고 집에 가기 위해  콜택시를 불렀다. 배차 문자가 왔지만 대충 보고 넘기고, 기사 아저씨의 도착 전화를 기다렸다.


"이제  사당역이니 5분 뒤에 도착입니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일치감치 사무실에서 나와 택시 타는 입구에 서 있었다. [예약]이라고 빨간 표시가 뜬 택시 한 대가 들어왔다. △△콜이라고 자동차 문에 큼지막하게 써져 있었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분당 정자동 가는 콜택시  맞죠~?'라고 대충 물어보고 택시에 올라탔다. 내가 가는 동네까지 기사님께 다 얘기하고 편하게 등을 기댔다. '가는 동안 눈이라도 붙여야지..' 잠을 청하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는 내가 사무실에서 불렀던 그 콜택시 기사 번호였다.


뭐지...?

난 이미 콜택시에 탔는데..?

지금 이 콜택시 기사는 운전 중이고, 나한테 전화 걸리는 없고...

내가 탄 콜택시는 뭐지??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은... 신종 범죄.

예약 잡힌 콜택시인척 들어와서, 우연히 택시를 기다리던 누군가를 태우고 범죄를 저지른다..?

일단 걸려오고 있는 전화는 받지 않았다. 내가 범죄 타깃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을 티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수도 못쓰게 되기 전에 내가 먼저 탈출할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난 콜택시 번호판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택시에 올라 탈 때도 기사 아저씨는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나 혼자서 '분당 가죠?'라고 먼저 묻고 출발했다. 시간은 새벽 3시. 주변엔 사람도 없고, 인적도 드문 시간. 수만 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일단 택시 번호부터 보자고 스스로 타일렀다. 택시번호를 엄마한테 보내고 이 상황을 알리자는 생각이었다. 앞좌석을 보려고 하는데 기사 아저씨 사진부터 눈에 들어오고 너무 험악한 모습에 나는 점점 더 공포에 휩싸였다.


아... 신호 걸릴 때 뛰어 내려야 하나. 신호등 없는 길로 달리기 전에 지금 뛰는 수밖에 없나. 회사에 중요한 물건을 놓고 온 척 돌아가자고 말해볼까. 말 거는 순간 돌변하면 어쩌지. 끊임없이 온갖 생각을 다 하는 중에 기사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디시라고요?"

"ㅇㅇ홈쇼핑이요?"


콜택시 부른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오냐는 전화였다. 하아... 땀으로 범벅이던 손바닥에 힘이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이 안도되는 순간이었다.


심야 방송으로 새벽 3시에 퇴근하던, 나와 똑같이 분당 정자동에 살고 △△콜택시를 애용하는 또 다른 여자분이 부른 콜택시에 내가 올라탔던 것이다. 기사님도 황당해하며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다른 콜택시 타라고 안내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날 택시 안에서의 5분은 마치 5년 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나의 부주의로 상대방을 오해한 것은 반성할 일. 정말로 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에피소드로 끝나게 된 것은 감사한 일. 어쨌거나 어떤 일이든 내가 더  주의해야 된다는 걸 느낀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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