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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Nov 12. 2021

무급 휴직자의 통장잔고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 노고에 감사를

-휴직계

 “네가 아주 큰 그림을 그렸구나”

 둘째를 임신했다. 팀장님께 2년 가까이 되는 휴직 계획을 말씀드리자 팀장님께서 웃으며 반농담, 반진담으로 말씀하셨다. 큰 그림, 요즘 말로 빅픽쳐 맞다. 단 몇 개월도 아닌 무려 2년 가까이 되는 23개월을 쉬겠다고 말하니 말이다. (임신휴직 8개월+ 출산휴가 3개월 + 육아휴직 12개월) 다행히 팀장님은 ‘책상을 빼겠다’ 등의 농담은 하지 않으셨지만, 또 누가 아는가. 이미 휴직하기 일주일 전 파릇파릇한 신입사원이 내 책상이 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토록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휴직계를 낼 수 있게 된 요즘, 세상은 그래도 많이 변하긴 했나 보다.


-백수가 시간을 체감하는 방법: 넷플릭스 결제일

 회사를 다닐 땐 매달 실적 마감, 새로운 목표 세팅, 돌아오는 월급날 등으로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면, 하루하루가 특별히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되며 시간에 무뎌지게 되었다. 시간이 한없이 더디다고 느끼다가도, 어느새 자란 손톱을 보며, 딱히 차를 끌고 다니지 않았는데도 벌써 깜박이는 주유등 신호를 보며, 무엇보다 앞자리가 날마다 줄고 있는 통장잔고를 보며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월급날은 그렇게도 멀더니, 공식적인 ‘월급날’이 사라지자 각종 공과금이며, 어린이집 특별활동비며, 넷플릭스 이용로가 빠져나가는 날은 왜 이리도 빨리 돌아오는 것일까.


-무급휴직자의 통장 잔고

 납작한 플라스틱 칼을 가져와 저금통 입구를 휘저었다. 용돈이 필요하던 초등학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반년 가까이 무급으로 휴직 생활을 하고 있는 33살 나의 이야기다. 저금통은 심지어 우리 집 4살짜리의 것이다. 무슨 놈에 저금통이 돈 빼는 입구도 없는지. S은행에서는 패기 있게 “은행으로 가져오시면 열어드립니다”라는 문구만 바닥에 적어놓았을 뿐 어떠한 여는 방법도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 지폐 한 장 빼기 위해 저금통을 깨 부술 수는 없어 초등학생 때나 했던 방법으로 저금통 입구를 쑤시고 있던 것이다.

 이유인즉 남편에게 매월 25일에 생활비를 받기로 했으나 회사 대출이자 및 원금 상환일이 22일이었던 것. 3일 차이를 두고 딱 3만 원이 모자랐다. 신사임당 지폐 덕분에 내 목표는 단 한 장이면 충분했고 다행히도 (4살 꼬마에겐 미안하지만) 민망한 상황 없이 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휴직은 달콤했지만, 간혹 느껴오는 쌉쌀한 현실의 맛까지 맴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성취감, 자괴감

 일하는 이도, 집안을 돌보는 이도 모두 수고가 많다. 밖에서 싸우나, 안에서 싸우나 어느 자리에서든 싸우는 건 마찬가지이고, 서로의 노고를 인정해 줄 때 우리는 다음 날을 또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일하는 입장에서 나는 전업주부가 꿈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주부’가 꿈이다 (가정 보육하는 엄마들을 세상 누구보다 대단하다).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로 간혹 ‘일하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 또는 ‘일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을 언급한다. 하지만 전업주부가 꿈인 내가 보기에는 성취감은 사회생활이라는 고난의 연속 중에 드물게 한번 찾아오는 것. 그리고 자괴감은 행복의 연속에서 드물게 한번 찾아오는 것이란 생각을 하니, 역시 육체와 정신에 해로운 직장생활보단 행복한 주부가 되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생각했다.

 답을 알면서도 그런 행복한 주부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일까? 아니면 한 번도 마주해보지 못한 ‘드물게 찾아올 자괴감’을 대면할 자신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험한 내 모습 VS 험한 꼴 당하는 내 모습

 전업주부가 되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자체가 험하다. 그래도 어디 가서 험한 꼴은 안 당한다. 통장잔고가 초라하긴 하지만, 어딜 가나 나는 ‘내 돈 내고 당당할 수 있는 소비자, 고객, 손님’의 위치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 남의 돈을 벌다 보면 그게 상사든, 후배든, 거래처든 때론 비굴해지고, 가끔은 마음에도 없이 행동해야 하고, 대부분은 피곤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인간관계라고 해도 결코 휴머니티의 ‘인간’이 아닌 이익과 경쟁 속의 ‘인간관계’ 말이다.


-힘내라 직장인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나는 55년생 김성주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아빠다. 딸로서 엄마의 (시댁) 이야기는 이미 많이 들어왔던 나였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었다는 아빠의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건, 아마 그 시대의 과묵한 아버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굳이 자신의 얘기를 해주지 않아도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나는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직장에 다니며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집에 가며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먹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좋아할 시현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집에 올 때 치킨을 사다 준 아빠의 퇴근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빠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버텨냈을까.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직장인들은 그렇게 치킨 한 마리, 아이스크림으로 그날의 피곤함을 털어내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그렇게 아빠의 가장 큰 힘이자 가장 무거운 존재였을 것이다. 세상에 모든 아빠들, 모든 가장들, 모든 회사원들은 존경받아야 한다.


-당신의 편

 회사에서 ‘안된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 누구라도 제발 좀 된다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모든 일이 풀리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버스 한 대를 잡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가는 한 아저씨를 봤다. 버스가 떠났을지라도 누구도 버스기사를 욕할 수 없을 정도의 먼 거리였다. 그런데 버스기사님은 아저씨를 친히 기다렸다. 내가 그 버스를 잡아 타기라도 한 듯 희열을 느꼈다. 10초를 기다려주는 여유를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10초의 여유를 일하고 들어온 우리 아내들, 남편들에게도 가져주면 어떨까. 회사에서 지겹도록 ‘안된다’는 이야기만 들으며 싸워 온 그들에게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모든 엄마들, 아빠들, 가장들, 안밖에서 힘들게 일하는 모든 이들은 존경받아야 한다.

오늘도 치킨 한마 손에 들고 퇴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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