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에 대한 온갖 고민이 시작되었다
" 사표를 내려고 합니다."
"박 선생... 무슨 일이야?"
"교사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가려고 해요."
"여행이야 방학 때 다니면 되지 꼭 사표를 내야 되나?"
"좀 긴 여행을 떠나려고요. 2년 정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발로 디디고 만나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있어요.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 아니.. 학생들과의 관계도 좋고, 수업 평가 점수도 좋고, 업무능력도 뛰어난 박 선생 같은 사람이 교직을 떠나면 어쩌나?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 같은데..."
" 제가 안 해본 일들 중에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해보지 않고서는..."
" 어험... 내 교직 경력 30년 동안에 이런 이유로 사표를 내려는 사람은 박 선생이 처음이네. 여자한테 이만큼 좋은 직장이 어딨다고... 정년 보장되지 연금 나오지... 아이고.. 벌써 결정을 내리고 나한테 통보하는 거지?
" 네.. 그렇습니다. 아껴주시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9년 만에 나는 학교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 오래도 버텼다.
그나마도 1년에 두 달이나 되는 방학과 또박또박 나오는 월급, 30여 년 버틴 후 받게 될 연금에 대한 유혹 덕분에 버틴 거다.
내가 교사라는 직업과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처음 느낀 건 교생실습 때였다.
이미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었던 교실에는 강자와 약자가 존재했고 각자의 성장 배경에 따라 온갖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한 작은 인간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과장되게 웃고 떠들고 화 내고, 남 보다 더 센 욕으로 자신의 파워를 보여주려 애쓰며, 무리에 끼기 위해 또는 혼자 따돌려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던 어린 인간들.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간간이 섞여 들려오는 욕설이 귀에 거슬렸다.
신체와 사고의 급격한 성장기를 거치며 어설프게도 세상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어린 학생들 앞에서 20대 초, 중반의 여자 교생은 몸에 맞지도 않은 어두운 색 정장을 차려입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지휘봉을 방패 삼아 근엄한 척 어설픈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이 끔찍이도 길었다.
이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나는 교사가 되어야 했다.
교사가 되는 것 말고 내 인생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므로. 내가 교사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냐 아니냐에 대해 의심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냐 아니냐만 중요했다.
나는 임용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교사가 되었다.
유난히도 추웠던 낯선 도시에서 급작스레 시작된 나의 사회 첫걸음은 내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힘들었다.
중학교 2학년 43명의 학생들의 이름표와 함께 학급 담임을 맡게 되었고, 7개 반을 맡아 과학을 가르쳤다.
선배 교사들은 어려웠고 업무는 낯설었으며 무엇보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나 자신이 어색해 미칠 지경이었다.
교사로서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고, 가능하면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다양한 자료를 찾고 만들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건 내가 잘 아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이들은 과학을 좋아했고, 내가 가르치는 반 아이들의 성적이 다른 반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거라곤 뉴턴의 법칙, 케플러의 법칙 따위가 전부였는데, 아이들은 내게 인생 사는 법을 물어왔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법, 집 나간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법, 폭력과 따돌림으로 힘든 아이가 전학을 가지 않고 학교에서 버틸 수 있는 법, 가족이 해체되고 사랑이 고파 주변의 남자애들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다니는 여자아이가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있는 법, 뭐 하나 제대로 잘하는 것 없는 소심한 아이가 자신의 꿈을 찾는 법, 중학교를 자퇴하고 싶었던 아이가 부모님에게 자신의 꿈을 설득시키는 법, 그냥 살기 싫다는 아이를 설득하는 법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을 고작 대학교를 갓 졸업한 초보 교사가 어떻게 아느냐 말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대답이나 하면 될 텐데 꼴에 교사라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던 나였다.
모범생에 착한 딸이었던 내가 전혀 몰랐었던, 몰라도 되었었던 세상이 자꾸만 내 눈앞에 나타났고 내게 "교사로서" 해답을, 아니 정답을 물어왔다.
세상살이에 대한 온갖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문제였다.
인간관계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고민들에, 꿈에 대해,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도 시간도 없었던 나의 문제였다.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는 걸 안다고 뻔뻔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간절히 내가 그 답을 알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행복할 수 있는 건지...
교직에 있는 9년 동안 수없이 고민했고 실수했고 시도했고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9년 만에 얻은 결론이 그거였다.
"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일단 나부터 행복하고 보자!!"
그래서 교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하며 내가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행복하지 않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칠 수는 없었으니까.
삶의 정답을 알지 못하는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길로 가라는 섣부른 충고를 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떠났다.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아는 사람들을 찾아서. 아주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1주일, 1개월, 2개월, 6개월, 1년 나는 여러 나라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렀다.
지금까지 내가 여행한 나라는 총 37개국.
삶은 여행이다. 나는 지금도 여행 중.
2010년 시작된 행복 찾기 여행은 11년째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많은 곳에 머물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 곳에서 떠나왔다.
지금은 케냐에서 5년째 조금 긴 여행 중이다.
그럼에도 아직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발견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때로는 세상 모든것을 가진듯,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은 듯 가볍고 행복했다가도
깜깜한 우물 속에 혼자 밤하늘을 바라보는 듯 인생이 외롭고 서글퍼 지기도 하니 말이다.
언젠가 내 삶의 여행을 마치는 날 그때쯤엔 깨닫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