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은 혼자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

단 한번 만이라도...

by 바스락북스

내 인생의 최악의 여행은 20대 후반쯤 떠났던 태국 방콕-파타야 5박 6일 패키지여행이었다.

20명 남짓했던 그 그룹에서 나는 가장 어린 여행자였다. 모두 알다시피 패키지여행은 가이드의 깃발을 놓치면 큰일이 난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집합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하고, 공항부터 호텔, 식당, 관광지와 공연장들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 종일 끌려다녀야 한다. 가이드가 가지 말라는 곳으로는 절대 가서는 안되고 아무데서나 함부로 물건을 사는 것은 위험하고 현지인들은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며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라텍스, 악어가죽, 이상한 만병통치약, 잡다한 기념품 숍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분명히 태국에 여행을 왔는데 매일 점심은 현지인이 어색한 한국말로 손님을 맞이하는 한식당에서 불고기나 김치찌개를 먹었다. 이 여행으로 태국은 덥고 불편하고 피곤하고 차 막히고 지저분하고 먹을게 하나도 없는 나라로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패키지여행은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몇 년 후 나는 혼자서 배낭을 메고 다시 태국 방콕으로 떠났다. 지난번 패키지여행 덕분에 태국이란 나라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지만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카오산 거리”에 꼭 가야만 했다. 교사생활을 하며 막연히 세계 여행을 꿈꾸던 시절이었기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이 여행 이후로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에 빠져 전 세계 약 35개국을 혼자 여행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롭다. 아프기라도 하면 더 외롭다. 많이 심심할 것이다. 조금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온 마음으로 당신이 일생에 한 번은 꼭 혼자서 외국 여행을 해봤으면 좋겠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지는 자유

단순히 본다면 여행이란 것은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먹고, 무엇을 보고, 어떻게 놀고 어디서 잘 지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이 잘 맞는 연인, 친구 사이라도 이 단순한 것들을 결정할 때 의견이 100% 일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서로 양보하고 맞추어 가는 여행도 정말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일생에 단 한 번쯤은 이런 사소하고 단순한 것들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누구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경험해보는 자유를 누려 봤으면 좋겠다.


세계여행 중 아르헨티나를 여행할 때였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마치 1900년대 유럽의 한 도시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던 오래된 골목들, 80대의 노부부가 음악에 흠뻑 빠져 몸을 맡기며 추던 탱고,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반도네온 연주, 입에서 살살 녹는 최고급 소고기 스테이크는 나를 그 도시에 2달 반 동안이나 묶어 두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는 12시쯤에 일어나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오후 3시쯤 탱고 강습을 들으러 갔다가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밤이 되면 밀롱가나 클럽에 가서 새벽까지 춤을 췄다.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내 안에 뜨겁고 묵직한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모두 남김없이 뿜어낸 후에 그 도시를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황홀한 경험이었다. 배려하고 맞춰줄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온전히 “나”에 집중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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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다고 믿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

나는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며 상체에 비해 하체가 튼튼하다. 작은 키를 감추려 꼭 굽 높은 신발만 신었고, 평생 다이어트 중이었으며, 튼실한 하체는 긴 티셔츠나 펑퍼짐한 바지로 반드시 감추고 가려야 할 부끄러운 부분이었다. 나는 한국 사회가 정해 놓은 미인의 기준과 끊임없이 나를 비교해가며 나의 단점을 최대한 감추고 가리려 애쓰며 평생을 살아왔다.

쿠바를 여행할 때였다. 그리 짧지도 않은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걷고 있는 나를 사람들이 계속 힐끔힐끔 쳐다본다. 외국을 여행하며 이런 힐끔거림을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느낀 시선은 조금 달랐다. 사람들, 특히 쿠바 여자들의 눈이 정확히 내 다리를 향해있다. 평생을 짧고 굵은 다리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나는 그들의 시선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 원피스가 아니라 긴치마를 입을 걸 그랬나?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남의 몸을 민망하게 쳐다보는 예의 없는 사람들이라니!! ”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동네의 작은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의자도 테이블도 없는 작은 가게라 피자를 기다리며 벽에 기대어 있는데 내 또래의 여자 점원이 말을 건네 온다. “ 너 정말 예쁜 다리를 가졌구나. 나도 너처럼 통통한 다리를 가졌다면 정말 좋을 텐데.”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군살 하나 없이 길쭉하게 쭉 뻗은 다리를 가진 그녀가 나에게 건넨말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쿠바 하바나 골목골목을 걸을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서는 하체가 풍만한 것, 특히 다리에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있는 것이 미인의 기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나의 치마 길이는 점점 짧아졌고, 심지어 몸에 딱 붙는 레깅스 차림으로 바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서서히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니 내가 보는 세상도 달라졌다. 나의 신체 일부를 부끄러워한다는 것, 가리고 숨겨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내 평생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상당히 낮추는 원인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이것과 완전히 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의 하얗고 뽀얀 피부는 항상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나의 자랑스러운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선크림을 꼼꼼히 발랐고 햇볕에 노출되는 부분이 없도록 피부를 꼭 가렸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외국 친구들은 나의 뽀얀 피부를 창백하다고 표현하며 내 건강을 걱정했고 구릿빛 피부를 만들기 위해 선텐을 좀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조언을 했다. 여행을 오래 하며 내 피부는 자연스레 구릿빛이 되어갔으며 썬텐의 즐거움을 안 이후부터는 하얀 피부가 미의 조건이라 믿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가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 내가 상식이라고 믿었던 고정관념들, 사회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 성공의 기준, 행복의 기준들. 이런 것들이 과연 절대적인 진실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전부라 믿고 있었던 작고 좁은 세상이 정해놓은 단순한 기준들로 나를 판단하고 상대를 판단하고 서로 비교하며 의미 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만약 그룹 여행으로 쿠바를 갔다면, 가족과 함께 또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다면 어땠을까? 쿠바 사람들의 이런 낯선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들의 시선이 부러움에 원인 한 것이었다고 한들 한국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가족이나 친구라면 더 하다) 주변에 있었다면 내가 허벅지가 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고 레깅스를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해 볼 수 있었을까? 아니다. 절대 그러지 못했을 거다. 혹시라도 내 얼굴이 햇빛에 그을릴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항상 내 피부를 챙기시는 엄마랑 내가 함께 여행을 했다면 나는 아마 햇볕 아래 온몸을 내놓고 즐기는 선텐을 시도 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 온전히 혼자 던져졌기에 나를 더욱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오랜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혼자이기에 가능한 뜻밖의 만남

혼자 하는 여행은 예상치도 못했던 뜻밖의 만남을 선물한다.

혼자 밥 먹는 게 싫어 혼자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당신이 친한 친구나 가족과 함께 10일 동안 여행을 한다면 아마 10일 동안 하루 세끼를 그 일행과 함께 먹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10일 동안 여행을 한다면 최소한 하루에 한 끼, 10번의 식사는 당신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낯선 사람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게 될 것이다. 로컬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여행자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 그들은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혼자 밥을 먹는 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말을 걸거나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거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어본다. 나는 혼자 여행을 했기 때문에 수많은 현지인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여행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은 현지 맛집, 관광지를 가 보았으며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진짜 로컬 집밥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는 아무래도 다가가기가 조금 더 쉽기 때문에 온갖 다양한 방면의 경험을 가진 전 세계의 배낭여행자들과 짧게 또는 길게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세계 여행을 하던, 나보다 10살이 어렸던 아이와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같이 걸으며 인생을 이야기했고, 통기타를 매고 여행하던 아일랜드 뮤지션과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먹으며 그의 음악을 들었으며, 70대 영국 할아버지와 코끼리 트레킹을 같이하고, 영국에서 온 어리바리한 의사들과 이집트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을 함께 보았다.

여행이란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일행들과 함께 서로 인증숏을 찍어주고, 가이드의 깃발을 쫓아다니는데 지쳐 여행의 즐거움을 잃어가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낯선 환경 속에 자신을 한번 던져 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당신이 전혀 상상조차 못 했던 새로운 자신을,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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