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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케냐에서 커피 농부에게 당할 줄이야!

아프리카에서 사회적 기업을?

by 바스락북스

굳은살이 두껍게 베인 손으로 쉬지 않고 커피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던 한 노인.

그의 이름은 사뮤엘.

창이 넓은 모자로 얼굴을 푹 눌러썼지만 그의 눈빛은 빠르게 동양에서 온 이방인인 우리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이 외국 놈들이 우리한테 무슨 사기를 치려고 온건가 아니면 우리를 이용해먹으려고 온건가?'

'아니면 내가 사기를 쳐 먹을 만큼 만만하고 어리숙한 놈들인가? 돈은 좀 있는 놈들인가?'


그는 푹 눌러쓴 모자 아래에서 날카로운 경계의 눈빛을 멈추지 않는다.

첫 만남부터 의도치 않게 그와 우리 사이에 암묵적인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커넥트 커피는 사회적 기업이다. 좀 멋있게 말해보자면 글로벌 소셜벤처이다.

케냐 현지법 상으로는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영리법인(limited company)으로 등록되어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주장해봐야 그 어떤 지원이나 혜택도 없고 이곳에선 사회적 기업이 뭔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커넥트 커피는 커피 산지인 케냐에서 소규모 커피 농가들이 품질 좋은 커피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직거래를 통해 좋은 가격에 커피를 구매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미션으로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라고 우리 부부는 굳게 믿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T.T)


우리가 케냐에서 커피숍을 열기도 전부터 시작했던 일이 생계를 위해 소규모로 커피를 경작하고 있는 농부들을 찾아내고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었다.

남편이 1년간 케냐의 커피 연구소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쌓은 인맥을 토대로 나이로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키암부 지역에서 커피 농사를 짓고 있는 5명의 커피 농부를 소개받았다.


커넥트 커피의 첫 번째 프로젝트! CONNECT SEED TO CUP 프로그램의 파트너 농가 선정 및 지원의 조건은 5가지였다.

1. 1 핵타르(약 3000평) 이하의 커피 농장을 가족 단위로 경작하는 곳일 것

2. 커피 재배 트레이닝을 받은 후 커피 생산량과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할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

3. 커피 판매 후 전체 생산량과 품질에 대한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공유해 줄 것.

4. 1인당 약 10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비료, 퇴비, 농기구, 프로세싱 도구 등 커피 경작에 필요한 곳에만 투명하게 사용할 것.

5. 지원금은 커피 판매 대금으로 3년에 걸쳐 나눠 갚을 것.


위 조건에 부합하면서도 커넥트 커피의 미션에 동의하는 5명의 커피 농가들을 추천받았고, 첫 번째 농부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커넥트 커피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는 케냐에서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각 농가의 토양 조사를 토대로 한 적절한 퇴비와 농약 사용, 커피나무 재배 관리에 관한 트레이닝을 받은 농부들의 시의 적절한 농장 관리만 뒷받침된다면 커피나무 한 그루당 2~3kg인 현재 커피 생두 생산량을 10kg까지는 늘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우리가 파트너 농가에 100만 원가량을 지원하여 제대로 된 농장 관리만 해 준다면, 커피 농가들은 최소 이전보다 2~3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테고, 그 돈으로 2~3년 안에 지원금은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 돈으로 다른 농가들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고 커넥트 커피는 이력 관리가 되는 고품질의 커피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가 있다.

아~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인가!


하지만 아무리 길게 자세히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해도 농부들의 질문은 단 두 가지다.

첫째, 당신들이 나한테 얼마를 지원해준다고?

둘째, 수확한 내 커피 당신들이 다 살 거라고? 킬로당 얼마나 줄 건데?


우리를 반갑게 여기고 고마워 하리라고는 바라지도 않았다.

5년간 교육 사업, 물품이나 기자재 지원 사업, 건축 사업 등 다양한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이런 일 한 두 번 겪은 게 아니다. 마을을 위한 것도 좋고 아이들을 위한 것도 좋은데 일단 내 주머니에 뭔가 들어오지 않으면 손 끝 하나 움직이지도 않던 마을 이장님들, 교육부 관계자들, 학부모 대표들 앞에서 얼마나 많이 절망했었는지 셀 수도 없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단순히 "당신들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도 아니고, 자신의 생계 수단인 커피를 팔아 벌게 되는 수입에 직결되는 비즈니스이다 보니 농부들의 입장에서도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릴 수 밖에는 없었겠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라는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해한다. 그래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5명의 농부를 차례로 만났고, 농장 상태를 확인하고 토양 샘플을 채취하여 토양 상태에 알맞은 비료와 퇴비를 지원하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한 달에 2번, 전문가가 농장을 방문하여 개별 트레이닝을 진행했고, 모니터링도 이어나갔다.

모니터링을 갈 때마다 농장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커피나무 잎에서는 반짝반짝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향기로운 하얀 커피 꽃이 줄지어 피었던 자리에 빨갛고 탐스러운 커피 체리가 열렸다.

Picture1.png 커피 꽃, 커피 체리

눈으로만 봐도 한해 전 보다 커피 체리의 수가 훨씬 많아졌고, 상태도 좋아졌기에 우리가 농장을 방문할 때마다 농부들은 뿌듯하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작년보다 2배는 수입이 많아질 거라고 싱글 벙글이다. 5명의 농부 중 특히 커피 제배에 열정이 가득했던 사뮤엘네 커피나무에서는 한 그루당 약 12kg의 커피 체리가 열렸다.


놀라운 반전은 수확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각 농장 별 커피 수확량과 등급, 그로 인한 수익을 계산해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농부들의 수익이 하나같이 그 전 해 보다 줄어든 것이다.


농부들은 울상을 지으며 이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받은 지원금을 전혀 갚을 수가 없다고 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결과였다.


몇 번의 수확철을 보내며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결과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첫째, 많은 커피 농부들이 커피를 수확하기도 훨씬 전에 수확할 커피를 담보로 협동조합이나 커피 가공 회사에서 돈을 빌린다. 대부분 자녀들 학비, 생활비, 병원비 등 급하게 필요한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이니 대출 이자가 엄청나게 높다.

그리고는 커피 수확철이 되면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커피 체리를 넘겨 대출금을 갚는다.

그러니 우리가 프로젝트의 효과성을 측정하기 위해 통계로 잡아야 할 수확량에는 각 농부들의 대출금만큼의 커피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둘째, 커피 농부들이 어떻게든 지원금을 갚지 않으려고 블랙마켓에다 커피를 야금야금 팔아 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농부들은 그렇게 커피를 판 돈으로 지원금을 갚는 대신 대문도 새로 달고, 지붕도 수리하고, 화장실도 새로 만들고, 염소도 사고 그랬던 거다.

이렇게 3년 동안 5명의 농부 중 단 한 사람도 우리에게 받은 지원금을 갚지 않았다.

농부들의 살림살이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국제개발 경력이 5년이 넘는 내가 케냐에 와서 커피 농부들한테 이렇게 당하다니!


물론 전문가답게 처음부터 계약서에 세부조항이니 위약 조건이니 상호 담보니 이런 것들을 다 넣어 놓았고 사인도 받았다. 하지만 결국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이 농부들을 상대로 고소를 할 수도 경찰을 불러 신고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는 케냐에 와서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나서야 수혜자로서의 커피 농부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커피 벨류 체인 내에서 농부들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원인들도 파악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커피 수매, 가공, 마케팅, 판매, 수출 과정도 확실히 마스터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관리와 지원이 뒷받침될 때 커피 수확량이 증가하고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하여 소규모 커피 농가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어찌 보면 500만 원 정도 투자로 얻은 수확 치고 나쁘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지난 4년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값진 노하우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확대해보려고 한다.

현장에서 속속들이 문제점들을 파악했으니 이제 제대로 된 해결책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커피 산지인 케냐에서 소규모 커피 농가들이 품질 좋은 커피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직거래를 통해 좋은 가격에 커피를 구매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커넥트 커피의 미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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