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 일을 겪고도? - 오일남
메일 제목 : Attention(주의)
보낸 사람 : Bahati Mwangi(누군지 모름)
내용 :
이 메일은 당신 가게(커넥트 커피)에서 세 가지 문제로 돈이 세어나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1. 열악한 재고 관리
당신은 당신들의 직원을 너무 믿는 나무지 재고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구매 담당자가 밀가루를 10백을 구입해서 파니니 빵 몇 개를 만드는지 아십니까?
밀가루 10백으로 200개의 빵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빵이 정말로 팔려나가는지 직원들이 먹어치우는지 확인하셨습니까?
혹은 구입한 밀가루 10개 중 1~2개를 직원이 훔쳐갈 경우 이것을 확인할 방법이 있으십니까?
로스팅 룸에서 원두커피 1kg을 가져왔을 때 이것이 몇 잔의 커피가 되는지, 혹시 로스팅 룸에서 가게로 커피가 내려오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커피를 빼돌리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있습니까?
2. 직원들의 횡령
당신들은 아래 직원들 때문에 정말 많은 돈을 잃고 있습니다.
린다- 케시어
프랑크 - 슈퍼바이저, 구매담당자
모세스- 키친 담당자
위클리프 - 해드 바리스타
손님이 가게에 와서 주문을 했을 때 캐시어는 시스템에 이 주문을 입력하지 않고 음료를 만들어 팔고 현금을 챙깁니다. 캐시어, 바리스타, 셰프가 한 팀으로 이런 일을 하고 매니저가 없을 때만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 일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특히 장사가 잘 되고 현금 구매가 많은 날 이들을 5000 ksh에서 10,000 ksh까지 돈을 챙겼고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런 나쁜 관습은 케네디(2년 전 매니저)가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직원들을 조심하고 주의 깊게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3. 기계 유지 보수
당신의 돈은 가게의 기계 유지보수 비용으로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냉장고나 쇼케이스 등이 고장 났을 때 슈퍼바이저인 프랑크가 기술자를 부르고 그에게서 커미션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크는 심각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기계들도 수리를 해야 한다고 하며 기술자를 부르며 당신의 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조언
1. 재고 관리 방법을 바꾸어야 하고 담당자도 바꾸어야 합니다.
2. 케시어를 바꿔야 합니다. 그녀가 바로 이런 도둑질을 부추기는 사람입니다.
3. 기계가 고장 났을 때 기술자에게 연락하는 것은 당신이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직원을 믿지 마십시오.
추신: 난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직접 조사해보시기 바랍니다.
일요일 저녁 6시쯤 받은 익명의 이메일 한통에 내 정신은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그의 편지 속에 언급된 4명의 직원은 지난 5년간 커넥트 커피에서 일하며 핵심 인재로 성장한 직원들이었다. 그릇 닦기, 바닥청소부터 시작해 지금은 메인 셰프, 해드 바리스타, 슈퍼바이저가 된 커넥트의 기둥이었다.
배신감과 실망감에 더해 부끄러움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케냐에서 절대 직원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전부 도둑놈들이라고 보면 된다'
'월급이 적은 직원은 적게 훔치고 월급이 많은 직원은 머리를 써서 더 많이 훔친다고 봐야 한다'
'주인이 눈을 뜨고 지켜보는 중에도 직원들은 수십 가지 돈을 훔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등등...
케냐에서 일을 시작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귀가 아프게 듣던 이야기, 익히 경험해 온 이야기다.
커넥트 커피라고 뭐 딱히 달랐겠는가?
물건을 훔치다가, 음식을 몰래 먹다가 쫓겨 난 직원들도 있었고 회사 몰래 카페 컨설팅을 따로 해 주고 다니거나 커피 원두를 훔쳐다 몰래 팔다 걸려 쫓겨 나간 직원도 있었다.
아무리 체크를 해도 컵, 숟가락, 접시 등은 끊임없이 사라졌다.
나름 지난 5년간 케냐에서 사업을 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당하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자만이었다.
제보 메일에 언급된 4명의 직원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서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준다고 생각하여 내가 믿고 일을 맡기던 핵심 인력들이었는데, 바로 그들에게 내가 또 당하고 만 거다.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 일을 겪고도?
저기 저 남자 말이야 술이 취한 건지 벌써 몇 시간째 저러고 있어.
행색으로 봐서는 노숙자 같은데
저대로 놔두면 금방 얼어 죽을 텐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자네라면 어쩌겠나?
가던 길을 멈추고 저 냄새나는 인간쓰레기를 도와주겠나?
"오징어 게임"에서 끝까지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연민을 버리지 않는 주인공 "성기훈".
게임 내내 주인공은 배신을 당하고 또 당하고도 계속해서 미련하게 사람을 믿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내기에서 또 한 번 노숙자에게 누군가의 손길이 가 닿으리라는 것을 믿었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오일남"과의 내기가 끝나는 12시가 되기 바로 직전, 길가던 행인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노숙자에게 다가와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왔어 사람이 왔어. 당신도 봤지? 당신이 졌어.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은 배신과 배신의 연속일 뿐!
" 이놈들을 아주 싹 다 잘라버려?"
" 아니 그냥 잘라버리기만 하는 걸로는 안되지, 경찰을 불러서 감방에 쳐 넣어버려?"
" 가족들까지 다 불러서 아주 창피를 주고 다시는 이런 짓 못하게 만들어 버릴까?"
" 내가 지금까지 지들한테 얼마나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줬는데 사람을 이런 식으로 배신해?"
" 내가 다시는 이 케냐 놈들을 믿나 봐라!!"
한참을 분함과 원망과 부끄러움에 가게에서 고개를 들어 직원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겨우 이성을 찾고서 제보 메일 속 내용들의 진위여부를 하나하나 가리기 시작했다.
열악한 제고 관리와 관련된 부분은 대부분 사실이었고, 직원들의 횡령과 관련한 부분에는 심증만 있을뿐 CCTV 자료나 직접적인 목격자 같은 증거가 없었다.
기계 유지 보수와 관련된 부분에는 오해가 있었다.
제고 관리와 창고 관리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창고를 정리하고 추가 인력이 필요하더라도 물건이 드나들 때 품목과 수량 체크를 두 번, 세 번씩 하게 했다.
횡령에 연루된 직원은 직접적 증거가 없기에 강제 퇴사를 시킬 수는 없었고 희망퇴직을 시키거나, 포지션을 바꾸었다.
기계 유지보수 업체를 바꾸고, 유지 보수가 필요할 때 무조건 보고하고 다양한 업체들과 접촉하여 일을 진행하게 했다.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 일을 겪고도?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다.
그 일을 겪고도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다.
1인 기업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내가 다 할 수 없는 한, 사람을 믿어야 하고 일을 시켜야 하고 함께 가야 한다. 사람을 믿되 시스템을 확실히 만들어 놓아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있는 여지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낯선 땅에서 사업하는 게 새삼스럽게 참 힘이 든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이런 일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으니 다시 정신을 추스르고 기운을 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