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케네디 이야기

믿었던 직원이 커넥트 커피를 떠났다.

by 바스락북스

그에게는 기분 좋은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케네디는 2년 전 11월쯤에 커넥트 커피를 찾아왔다. 훤칠한 키와 외모, 말쑥한 옷차림에 그는 항상 진지했고 예의 발랐으며 눈치가 빨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요구에도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하는 직원이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큰 눈을 반짝거렸고 스스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라며 추가 근무를 자청했다.

커피를 배우는 속도도, 상사의 눈에 드는 속도도, 그에 따른 진급과 월급 인상 속도도 빠른, 뭐든 빨리 적응하고 빨리 파악하던 똑똑한 친구 케네디. 케네디는 단시간에 해드 바리스타 자리에 올랐고 역할이 많아졌으며 다른 직원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역할 또한 맡게 되었다. 커피숍을 찾는 손님들은 항상 깔끔하고 예의 바르게 고객을 대하는 케네디를 좋아했고 신뢰했다. 케네디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는 가슴 가득 뿌듯함을 느꼈다.


이거 봐. 케냐에도 이런 친구가 있잖아. 그래 이런 친구들을 제대로 한번 키워보려고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라고.


케냐에서 커피를 통해 사람을 키우는 게 커넥트 커피의 목표였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 때문에 점점 지쳐가던 중이었다.

케냐 타임이란 게 있다. 약속시간이든 출근시간이든 중요한 회의든 30분에서 한 시간 늦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가 늦고, 늦게 도착한 사람은 딱히 핑계를 대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으니 제시간 맞춰 온 사람만 손해다.

아침 8시 오픈 시간이 정해져 있는 커피숍에 7시 50분이 되어도 직원들이 오지 않는다.

한국인 상사의 불같은 성격을 조금씩 파악하기 시작한 직원들은 저 멀리부터였는지 내 눈에 보이는 담벼락 앞에서부터였는지 숨을 헉헉대며 뛰어온다.

왜 늦었냐고 잔소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2시간여의 출근길을 걷고 뛰느라 온몸을 적셔버린 땀 냄새에 헉헉대는 거친 숨과 함께 입 냄새가 훅 끼쳐와 머리가 지끈해지고 속이 울렁거린다.


케냐 직원들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맡게 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예를 들어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치우고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컵을 씻는 일을 시키려면 4명의 직원이 필요하다. 철저한 분업이다.

손님이 한 명이든 10명이든 그건 상관없다. 일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이들은 자신에게 명확한 역할이 주어지길 바라고 그것 하나만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행여나 음료를 만드는 친구에게 주문을 받으라고 하면 바로 표정이 안 좋아지거나 또는 두 가지 일 모두 버벅대며 일을 망쳐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많아졌으니 월급을 올려달라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케네디는 달랐다. 항상 시간 약속을 칼같이 지켰고,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예스”라고 대답하고 맡은 일을 척척 해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그의 향수 냄새가 너무 강해 커피 향을 덮어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해드 바리스타가 되고 직원들의 불만이 조금씩 커지더니 직원들이 하나둘 사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것처럼 다른 직원들이 따라와 주고 일을 해주길 바랬으나 그것은 케내디가 아닌 다른 직원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나 보다.

너무 엄격한 기준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케네디에 대한 반발로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었고 케네디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여직원들의 뒷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그래도 나는 입안의 혀처럼 일하며 나의 요청에 무조건 예스로 대답하는 그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케네디 대신에 5명 직원의 손을 놓아버렸다.

직원들 사이에 잡음은 끊이질 않았고 팀 워크는 엉망이 되었으나 나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습관처럼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가 바뀌어 주기를, 좀 더 나은 리더가 되어 주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 충고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며, 한참을 그렇게 버텨온 거다.


그는 한참 동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해드 바리스타로 있는 동안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왔고 현재 월급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제시하며 그를 스카우트해가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케네디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카타르의 왕족 출신이면서 커피 회사를 운영 중이었던 한 손님은 끈질기게도 케네디를 유혹해왔다. 커넥트에 손님으로 왔던 그들은 가게에서 케네디를 만났다.

몇 번의 방문 후에는 가게에 직접 오지 않고 케네디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그를 통해 디스카운트를 받아 많은 물건과 커피를 사가기도 했다.


어느 날 퇴근길 위아래 반짝이가 들어간 붉은색 양복에 나비넥타이까지 한 케네디를 만났다. 저녁에 카타르 대사관 행사에 초대를 받아 케냐에서 제일 좋은 호텔인 캠핀스키 디너파티에 간다며 한껏 들떠 있다.

갑자기 가슴이 싸해지며 뒤통수가 뜨끔해진다.

그로부터 며칠이 되지 않아 케네디는 4달 후면 둘째 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자신이 하는 일이 과도하게 많으니 월급을 좀 올려 달라고 말했다.

나는 회사 사정이 많이 어려우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의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실제로 회사의 매출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이었고 지출은 늘기만 했으며 통장 잔고는 항상 바닥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버텨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케네디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고 나는 속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찾고 있었다. 나는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


그는 그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 나섰던 것 같다. 회사를 통해 들어오는 컨설팅 문의를 중간에 가로채어 개인적으로 몰래 진행하고, 가게의 물건도 슬쩍 훔쳐가서 팔아왔던 거다.

이 사실이 회사에 발각된 다음날 그는 이메일로 사표를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먼저인가 사업을 키우는 게 먼저인가?
그가 지금보다 2~3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제안을 받았고 커넥트는 그만큼의 보수를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웃으며 그를 보내주는 게 정말 그를 키우는 건 아닌가?


나는 일생을 흙수저에 “을”로 살았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과외 선생을 할 때부터 늘 어딘가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였다. 월급쟁이의 입장에서는 사장이 참 어리석어 보인다.

돈을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직원들의 복지나 근무환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회사의 발전을 위한 직원들의 진심 어린 충고는 항상 무시한다.

사장들은 하나같이 뭔가에 쫓기는 듯했으며 엄청나게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늘 뭔가를 더 원한다.

적어도 내가 근무해온 직장은 그랬다.

월급쟁이 생활을 하며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나은 이상적인 직장이 있을 거라고 항상 생각해 왔고 적어도 내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면 이 부분만큼은 저들보다 더 잘하리라 장담했었다.


이랬던 내가 케냐에 와서 사업을 하며 갑자기 “갑”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도 무시하던 그런 어리석은 사장이 되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지독하다 어리석다 비난했던 사장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항상 회사에 불평불만을 가지고 회사를 위한다며 할 말은 다하던 나였다.

월급은 꼬박꼬박 받으면서도 조금만 더 나은 직장이 있으면 당장 이 곳을 떠나리라 제2의 대안을 끊임없이 찾던 나였다.

임용고사를 쳐놓고 결과를 기다리던 2개월 동안에 동네 학원 강사로 취직해 일하고 시험 결과가 나오자마자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슬쩍 사표를 던지고 도망쳐왔던 나였다.

케네디에 이어 믿고 의지해온 2명의 직원이 연이어 커넥트를 떠났다.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무기력해져 버렸다.


사업을 하며 나는 인생을, 사람을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을"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갑"의 역할을 살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가 앗다.

사람을 키우면서도 사업이 망하면 안 된다.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추며 함께 성장하는 일. 꼭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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