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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ECT WITH PARK Apr 03. 2022

사이드 미러를 사수하라!

잊고 있었다. 그래 여기가 케냐였지? 

단 3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게에서 집까지는 차로 3분 거리. 

차에 시동을 켜고 가게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해 약 1분 40초쯤 지난 후였나?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해 있던 내 차 옆으로 바싹 마르고 어두운 색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운전석 반대편의 사이드 미러를 양손으로 잡고 두 번쯤 끄떡 끄덕 흔들어 휙 하며 거울을 빼들고는 냅다 뛰어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이게 무슨 일인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던 나는 1.5초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고, 그 후 정신이 퍼뜩 들어 미친 듯이 애꿎은 자동차 경적을 울려댔다. 

빵빵~~ 빠~~~~ 앙!! 빠~~~~~~앙! 


케냐 나이로비 시내의 번화가, 앞 뒤로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내버려 두고 그를 뒤따라가 갈 수도 없는 노릇이려니와 작은 동양인 여자가 따라간다고 잡혀줄 도둑도 아니니 나로선 사이더 미러가 떨어져 나간 차 안에서 경적이나 울리며 앉아 있는 수밖에 딱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자동차 뒤쪽으로 달아났고 어느새 시야에서 저 멀리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겠다고 본능적으로 왼쪽 사이드 미러를 바라보았지만 그곳엔 거울이 떨어져 나간 시커먼 플라스틱만 남아 있다.   


주차된 차의 사이드 미러를 통째로 뜯어간다거나 바퀴를 빼간다거나 차를 정비소에 맡겨 놓으면 웬만한 정품 부품들은 값싼 중국산으로 바꿔치기한다거나 이런 흉흉한 이야기들을 언젠가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아마 '요즘은 옛날만큼 나이로비 치안이 나쁘지 않아, 내가 좀 더 조심하면 되지 뭐'하며 가볍게 듣고 흘렸을테지. 

케냐 살이 6년째, 이제 뭘 좀 안다고, 익숙해졌다고 마음이 살짝 풀어지니 바로 이런 일이 벌어져 내 정수리에 찬물을 확 끼얹는다. 


정신 차리라고!! 여기는 아프리카 케냐야!! 잊지 말라고! 

너덜너덜 해진 정신을 추슬러 담으며 슬금슬금 차를 끌고 간신히 집에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보니 당장 오후에 아이 유치원 픽업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퍼뜩 든다. 

아~ 오후에 운전해야 하는데 당장 사이드미러를 어디서 구하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카센터, 현지 드라이버가 알고 있다는 정비소 등에 내 차 모델을 알려주고 사이드 미러를 수소문해 놓은 후(케냐 정비소에는 다양한 차종의 자동차 부품을 모두 갖추어 놓고 영업하는 곳이 거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케냐에서 제일 큰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에 들어가 내 차 모델명의 사이드미러를 검색해봤다. 

꼭 내 것인 것만 같은 수많은 중고 사이드 미러가 올라와있다.

이것들도 분명 누군가의 차에서 훔쳐다가 팔고 있는 것일 거야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 피식 웃으면서도 혹시 금방 올라온 물건 중에 내 것이 있는 건 아닌가 최근 등록된 몇 개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중고 사이드 미러 하나 가격은 4000실링이었다.  한국 돈으로 약 4만 원쯤. 

열심히 일해봐야 한 달에 20만 원을 벌기 어려운 이 나라에서 단 3초의 수고로 이 정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비즈니스군 하는 지극히 케냐스러운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가뜩이나 가난한 이 나라에서 2년이 넘게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 불황과 실업문제는 점점 심각해져만 가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올해 8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부족 간의 갈등, 폭동에 대비해 외국인들, 부자들은 달러를 쌓아 놓기 바쁘고 모든 투자나 프로젝트는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뤄졌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 유난히 길거리에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휠체어를 탄 아이, 눈이 먼 할머니와 손자 벌 되는 소년, 한쪽 팔이 없는 아저씨,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젊은 청년, 젖먹이를 등에 업고 3~4살 되는 아이 손을 잡고 동전통을 달랑 거리며 구걸하는 젊은 엄마.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딸그락딸그락 동전 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운전석 옆으로 다가와 창문을 톡톡 치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마주치는 그 사람들에게 이젠 동정이나 연민보다는 불편한 마음과 짜증이 훅 하고 올라온다. 

황급히 가방을 뒤져 동전을 꺼내 들고 창문을 빼꼼 열어  동전통에 달그락 돈을 던져 넣고는 고개를 돌린다. 

혹여라도 동전이나 잔돈이 없을 때는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다. 

일부러 못 본 척하기도 하고 때로는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그들이 스스로 포기하고 뒷 차를 향해 갈 때까지 그 불편함과 어색함을 견뎌낼 수 밖에는 없다. 


그래 나는 케냐에 살고 있다.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겪지 않았어도 될 이런 불편한 일들을 겪어내며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벌써 6년째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고 큰딸이 한국으로 돌아와 옆에서 살기를 바라시는 부모님에게는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딜 자꾸 오라는 거야?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날씨도 좋고, 인건비 싸서 가정부 운전수 쓰며 살고, 야채 과일 풍부하고 한국 음식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구해가며 여기서도 한국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라고 말하지만 가끔씩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이 그립다. 


무엇이든 불편한 것 부당한 것은 못 견디고 빨리빨리 고치는 나라 한국

시스템과 규칙이 잘 갖춰져 있고 사람들이 그 시스템에 잘 따르는 나라 한국 

길거리를 걸을 때, 운전할 때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소매치기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나라 한국 


한국에 살 때는 보이지 않았던 장점들이 외국에 사니 더 잘 보인다. 

오늘따라 한국이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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