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고 유능한 화가들만,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예술가들만 가능할 줄 알았던, 내가 동경해 마지않던 그 유화를 내가 그리게 되다니!
일주일에 한 번 받는 개인 레슨은 유명 화가가 그린 명화를 모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전한 작품은 모네의 "과일이 있는 정물"
그림 속 시간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하얀 천이 깔린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들. 배, 사과, 포도, 복숭아
노을이, 빛의 방향이, 빛의 강도가 과일의 색과 모양을 어떻게 다양하게 만드는지, 밝음을 표현하기 위해 어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것들을 작가는 어떤 색의 물감을 어떻게 써서 표현해 내는지 배우는 과정은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렇게 그럴듯한 나의 첫 작품이 완성되었다. 뿌듯~
모네 '과일이 있는 정물' 모사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 같은 것들을 몇 가지 색의 한정된 물감으로 표현해 내는 것은 마치 마술 같았다.
풍경화를 그릴 때는 길을 걷다 보이는 다양한 나뭇잎 모양과 형태, 나무줄기 하나에 섞여 있는 수많은 다양한 칼라들, 구름의 색이 하늘의 색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들, 그 색깔의 변화 들이 유심히 보였다.
그리고는 어떤 색깔의 물감을 어떻게 섞어야 저 색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하다가
‘뭐야, 내가 진짜 화가라도 된 거야? 싶어 피식 웃기도 한다.
클림트의 작품 '칸소네의 교회'를 모사할 때는 화가가 왜 하얀 교회 벽에 뜬금없이 보라색과 짙은 푸른색을 섞어 놓았나 궁금해하며 그림을 따라 그렸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운전 중 무심히 바라본 오래된 흰 건물의 그늘 언저리에서 보랏빛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클림트의 '칸소네의 교회' 모사 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 나에겐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화방에서 새로운 색깔의 물감을 하나씩 살 때마다 느끼는 사소한 행복과 설렘이 그것이다.
원하기만 하면 어떤 그림 도구라도 언제든 살 수 있는 한국이 아니라 이곳은 뭐든지 부족한 케냐!
케냐에서는 내가 원하는 색의 물감이나 미술 용품들을 내가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살 수가 없는데, 이 것이 나에겐 또 보물 찾기를 하는 것 같은 재미를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화방에 갈 때마다, 그림의 주제가 달라질 때마다 원하는 색의 유화 물감이 새롭게 보이고 새로운 색의 물감 하나를 사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또 나는 그림을 그리며 나는 혼자 캔버스와 마주 앉아 그림에 집중하는 그 시간의 고요함에도 매료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사라지는 것처럼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없어진다.
몇 시간이고 그림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보면 현실 속의"나"는 사라지고 캔버스 속에 "색"이 채워진다.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모사
4번째 모사 작품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를 마치며 미술 선생님께서 이제부터 모사가 아닌 진짜 내 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하셨다.
진짜 "내 그림" 말이다.
내 그림을 그린다고??
뭘 그리지?
어떤 화풍으로 그리지?
그림으로 뭘 이야기해야 하지?
아니 뭘 이야기 하긴 해야 하는 건가?
혼자 한참을 심각해졌다.
그러다 생각했다.
그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도 없고, 그림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데 뭐 때문에 이렇게 심각해진 거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오래되고 익숙해져 색이 바래지던 삶에 새로운 색깔의 물감 하나를 선물해 주는 것 같다. 하나의 새로운 물감은 때론 원색 그대로, 때론 기존에 있던 색들과 잘 섞여 삶에 더욱 다양한 색을 입혀준다.
그림으로 내 삶이 조금 더 다양한 색의 빛을 낼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값진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