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일대기와 나. [바다 수필집 02]
나와 연애하기 (에세이) (love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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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연애 일대기와 나 자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뜨겁고 빠른 감정이 지나가면 그 이후는 미지근하다. 사실은 살짝 지루해서 이게 나로 살아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느꼈었다.
나로 살아가는 것. 내가 내 이름과 내 몸으로 눈을 떠서 불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 일은 어제의 내가 어지른 것을 오늘의 내가 치워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과 내일은 또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그 어떤 하루도 에피소드 형식으로 무 자르듯 잘리지 않는다. 현재의 나의 작은 흥미는 어쩌면 미래의 나의 거대한 직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오늘의 부푼 꿈은 먼 훗날 나의 버려진 소원으로 질 수도 있다.
나로 살아간다는 건 내가 나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 이 일에 관해서 설레임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제는 지쳐서 나로 살아가지 않으려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오히려 그 모든 가능성들이 실패로 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끝없는 부담감이 파도처럼 날 덮친다. 그러면 홀딱 젖은 생쥐꼴이되어서 나는 다른 빛나는 이들을 살펴본다. 그들의 재능은 반짝이고 노력은 더 화려하게 빛나고. 내 눈은 그들에게서 떼어질 수 없다.
이런 남들을 향한 내 관심은 진실로 말하건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어왔다. 이성을 향한 관심은 짝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열망하는 롤모델을 향한 관심은 때때로 질투와 존경이 번갈아 이름을 장식했다.
몇 번 내가 좋아하는 이가 나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그때 나는 느꼈다.
연애라는 것은 사실 그 이름만큼 가볍지 않은 것이라는 걸.
나를 돌아보는 게 무서워서 남들만 보던 내게 연애는 나를 남과 공유하는 차원의, 아주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내 엉망진창인 속모습과 버려진 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준비되지 않은 공연을 하는 기분이다. 그 공연 동안 나는 시종일관 초조하고 겁을 먹는다.
그리고 그 공연 후에 사실 객석의 반응이, 그러니까 상대방의 반응이 꽤나 괜찮았다고 느끼면 그 이후에 일이 시작된다. 완전히 나를 보여준다. 상대방을 나도알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세상이 되어서 또 다른 우리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연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작은 습관과 취향까지 하나하나. 이걸 알아가는 단계가 나는 꽤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는 내 세상을 제대로 관리도 못하는데, 네 세상까지? 거기서 나아가 우리의 세상을 만들자고?
그래서 네 세상에 들어가다가 바로 후다닥 뛰쳐나왔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등 돌려 외면했다. 난 네가 아냐. 난 타인이야. 이런 말들로 선을 쭉 긋고 맞는 말이지만 사실은 무언가 음이 다른 주장으로 나를 보호했다.
이 말은 사실 상대방과 내가 우리가 되는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말과 동일한 것 같다. 한 마디로 내가 너를 보기만 하겠다고 말하는 것. 너는 저 미술관의 전시품이고 나는 거기 잠깐 들린 관광객이니까, 너의 비하인드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아. 어디가 아프고 어떻게 숨기는지 나는 알고 싶지 않아. 이렇게 또 자기 자신을 외면하는 습관이 남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들의 최고의 순간을 보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나의 최악이나 보통의 순간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모든 타인은 나의 관심의 대상이고 그들을따라다니다 보면 결국 내 자신은 계속 땅으로 꺼지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직업을 찾으려면 간단한 질문 하나에 대답을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이 두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 게 인생의 부분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이것도 모르면서 나에 대해 무얼 안다고 나는 떠들어대는 걸까? 마치 흥미와 관심사를 묻는 게 연애와 닮아있어서 나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나와 연애하기.
이번에는 진득하게, 오래오래, 올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내년 크리스마스까지 그리고 그 뒤 수많은 크리스마스까지 잘 연애해보고 싶다.
제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