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01
내 인생의 향수는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는 화장품 리뷰 쓰고 받은 백합 향의 향수.
두번째는 유학가기 전 송별 기념으로 받았던 어색한 향수.
지금의 향수는 벚꽃 향이다. 조금 늦은 내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다. 어색했던 향이 지금은 익숙해지고 반가워지기까지 했다. 몸에서 인공적인 향이 나면 호텔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호텔 로비는 들어설 때부터 그 존재감을 향으로 내뿜는다.
점점 익숙해지다보면 냄새만 맡아도 호텔이 생각이 난다. 거대하고 근사하고. 그러나 집은 아닌 곳. 마치 한바탕 영화를 보고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허탈한 기분이 든다. 향수로 그런 기분을 낼 수 있어서 현실에 발 딛기 싫고 붕 뜨고 싶을 때 아무도 만나지 않지만 향수를 쓴다.
오늘은 오랜만에 박혀 있던 향수를 뿌렸다. 머리 속에 생각은 아주 많은데 그걸 일일이 다 꺼낼 생각은 못하지만, 일기를 쓰려고 하니 왠지 조금은 들떠서 향수를 뿌렸다. 아니, 롤온의 형식이기 때문에 손목에 굴렸다.
향수는 명백하게 사치품이라는 개념이 내 머리 속에 뿌리 박혀있다. 어릴 적 엄마의 장식장에 장식장이 부러질 듯 가득하게 모여있던 작고 앙증맞은 향수병들을 기억한다. 저 작은 유리병들로 얼마나 공예를 해두었는지. 만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도 못 들 만큼 예뻤다.
이제 그 투명한 액체들이 하나에 못해도 5만원씩은 한다는 걸 알 정도가 되자, 더더욱 향수에 호감이 없어졌다. 그러나 오늘 향수를 뿌린 이유는 생각들로 덮여진 머리를 조금 비우고 싶어서이기 때문일 거다.
유럽에 가보고 싶다. 학생이니까 방법이 있지 않을까? 겹겹의 뭉게구름을 보면서 향수처럼 붕 뜬 생각을 해본다. 생각은 생각이니까. 마음이 조금 찔려도 일단 생각할 수는 있지 않은가. 대담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