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가는 길도 줄거운 거구나
다녀왔다.
못 들어갈 줄 알았다. 앞에서 한참을 돌고 망설이다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나도 그 열기를 느끼며 끝끝내 문을 열 줄 알았다.
그냥 열었다.
가게는 정말 작았고 그러나 작지 않았다. 두 작가의 타이핑치는 소리가 끝이지 않고 들렸다. 어서오세요라는 말은 낮은 음계로 잠깐 치고 나갔고 높은 목소리로 두 분이 작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봐야할 줄 몰라서 잠깐 얼탔다. 이리저리 고개만 돌려보면서 와 정말 작구나 생각했다. 인스타로 봤던 장식들과 전시는 정말 한평이었다. 그러나 가게라는 공간이 하나의 수조라면 그 수조 전부가 너무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아쉽지는 않았다. 한쪽은 완전히 작업실, 다른 쪽은 서재였다.
큐레이션을 보려고 작은 메모들을 읽으려는 노력을 했으나 작아서 잘 안 보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책을 찬찬히 보았다. 그리고 책장 너머로 작가님을 보았다.
그들은 살아있다.
제작년부터 거의 매일 틀어놓은 팟캐스트인지라 작가님의 목소리는 너무 익숙했다. 얼굴도 익숙해. 인스타에서 보면서 덕질했기 때문이지.
팟캐스트로 들었던 작가님의 소설은 잘 진행되고 있을까?
하는 참에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두분이 나누셨고 난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들의 삶은 여전히 진행중. 그들은 살아있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활력이 되는지 모르겠다.
여담으로 제노 콘서트에는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보면 지금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들어오자마자 너무 아무도 없고 책장 하나만 있고 작가님들은 나를 방임하듯 서로 작업 이야기에 열중이셔서 나갈까 생각했다.
그냥 책을 찬찬히 봤다. 다 봤다. 꺼내도 보고 뒤에도 읽어보고 속도 읽어보고.
난 목표가 있지 않은가?
글에 대한 마음을 잡겠다고 왔으니까.
덜컹. 책에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다니. 책장에서 꺼내다가 슬쩍 두 분의 눈치가 보였지만 대충 다시 집중했다.
그리고 역시나. 유레카.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모여 있었다. 독립서점 좋구나, 생각하면서 도서관에서는 내가 찾지도 않았고 발견하지 못한 책들을 하나하나 선별했다.
두 권을 업어왔다.
소설에 대한 중국인 소설가의 책 하나. 글쓰기에 대한 따뜻한 책 하나.
사면서 작가님 얼굴을 마주했고 팟캐스트 봤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갑자기 지금까지 그냥의 힘으로 냈던 용기가 바닥이 났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말도 더듬고 지갑도 안 닫히고. 그래서 결국 그냥 나왔다.
아쉽다. 다시 못 만날텐데 말할 걸.
엄밀히 말하면 나는 글을 쓰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거라 그 작가님을 보러 다시 이 곳에 오는 건 자체 기각이다.
책장의 두번째 칸까지 구경하고 있을 때 손님 두 명이 들어왔다. 들어오면서부터 왁자지껄한 게 한 손님이 엄청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난 속으로 ‘그래. 동행인의 용기까지 빌려 여기로 왔구나.’ 생각했다. 그 사람과 나는 다를 게 없다. 나도 부끄럽고 그도 부끄럽지만 우리는 왔다. 그 분이 소곤소곤 전시며 작가님의 책이며 다른 분께 설명해주는 걸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그리고 날 칭찬한다. 혼자 여기까지 용기를 내어 잘 왔다. 잘했다고.
여행은 가는 길, 그 곳에서의 시간, 오는 길까지 즐거운 거구나. 오늘 알았다.
가는 길은 기분 좋은 잠기운에 잤다가 로맨스 소설 팟캐스트를 들으며 또 기분좋게 밖을 구경했다. 터널 속에서 번쩍번쩍거리는 내 몸 위의 빛을 멍하니 쳐다보고. 지하철을 타면서 색을 따라 길을 가고 잘못 타서 다시 타고.
나랑 비슷하게 잘못 탄 사람을 보고 웃어버렸다. 그러고나니 긴장이 그냥 없어졌다. 구멍 뚫린 튜브에는 바람이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길치인 나는 보도용 길찾기 앱을 찾았기 때문에 구글맵에사 본 독립서점을 금방 찾았고 생각보다 근사했다. 내 편견이 좀 있었나보다.
그리고 다시 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못 쓴 오늘의 원고는 생각하지 말고 남은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