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는 한 번으로 족해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난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마다 생일 축하를 받았다. 심지어 한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도 받았다.
어떻게 그랬을까?
나는 지금 의대생 룸메 언니의 수업 옆자리에 앉아있다.
사건의 전개는 간단하다. 난 어제 언니에게 "방학이 너무 길어서 심심하다. 학교 가고 싶다." 라는 망언을 소리쳤고.
언니는 (의대는 방학이 짧아서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절규했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그러면 내일 내 친구들이랑 있을래?라고 내게 물어봤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물음표를 띄웠다.
언니 친구들? 언니 내일 학교 안 가나?
"언니 학교 안 가?"
"가지."
급하게 언니가 말을 얹었다. 학교에 다른 학생들 많이 온 적 있다고. 그때까지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언니가 뉴욕대, 심지어 중문대 학생까지 교실에 들어온 적이 있다고 했을 때.
"...? 중문대?"
그거 홍콩대 라이벌 학교 아니었나?
아주 심심했고 어차피 도서관에 앉아있을 예정인 나는,
의대 도서관이나, 수업 시간이나 다 책상 있고 컴퓨터 있으니 괜찮겠지 싶어서 바로 "그랭! 가자!" 라고 외쳤다. 어제 우리 둘은 아주 행복했다. 내일 재밌겠다라고 조잘조잘거리며 잠에 들었다.
딱 한 번만 하고 안 할 언니 의대 구경과 수업 구경은 다음과 같다.
일단, 교수님들이 내 생각보다 덜 딱딱하다.
역시 남의 수업은 재밌다.
의대생들은 서로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친하다. 보기 좋다.
보는 사람들마다 언니가 나를 소개시켜주고, 바로 "오늘 생일이래!"라고 하면, "생일축하해!"라고 축하받았다. 거의 내 이름 소개하면, 바로 생일축하해! 소리를 듣는 속도였다.
처음 홍콩에 와서 맞는 생일이라 혹시나 옆구리가 허전하면 어쩌지 했는데. 올해 생일은 정말 축복 위에 축복을 받았다. 한 남학생이 킬킬거리며 "너 오늘 축복을 아주 많이 받겠다." 했는데, 딱 맞아떨어졌다.
생일 축하 위에 생일 축하. 미소 위에 미소. 어느덧 익숙해진 얼굴은 내게 반갑게 웃어주고.
수업 후에 힘들었다며 서로 농담을 하는 모습들.
그 안에 이방인인 나는 살짝 껴서 그 분위기를 누렸다. 사실 이방인도 아니다.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았는 걸.
오늘은 새해 목표를 새로 세우고, 4분기 목표도 세웠다. 그래서 이번 달의 목표는
웹소설 로맨스 판타지 10화 분량 원고 투고하기.
열심히 쓰고 있다.
하지만 정말 처음으로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는 게 더 신나고 설렌다. 언니는 절규하고 있지만 수업은 정말 재밌다. 잘하면 나도 이번 학기에 정신병리학을 배울 수 있으니 완전 내 관심 분야를 배우게 된다. 그럼 정말 재밌겠지. 히히.
역시 나는 심리학을 좋아한다. 공부도 좋다.
내가 왜 글을 힘들어 하는지 생각해봤는데 생각보다 간단한 것 같다.
1. 글 쓰는 게 힘들다 -> 이유: 긴 분량을 쓰는 게 힘들다
2. 언제까지 해야 할지 막막하다 -> 이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데뷔)
그래서!
1. -> 방법: 아침에 뽀모도로 2번 하기. 쉽고 가벼운 분량 쓰기.
2.-> 내 계획을 따라가기. 1분기는 소설 투고. 1월달은 로판 10화 분량 원고 투고.
로 바꾸었다.
잘 될 것 같다.
얼어서 덜덜 떨며 말하던 서브웨이 주문도 이제는 능숙하게 했고, 음 그 외에 또 뭐가 늘었을까?
속으로 "나 글이 쓰고 싶다." 라고 말만 했던 날에 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웹소설도 장기적으로 쓰고 있고, 투고도 하고 있고, 출판사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도 하고 있다.
절망도 도전을 해야 해보지, 이렇게 소리치며 답답해하던 작년 11월의 나는 번아웃 비슷한 게 와서 글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왔다. 하지만 "그냥 즐겁게 쓰자!"라고 생각하는 과정을 지나쳐 현재는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라고 침착하게 말하게 되었다.
21살이 되었고, 국제 나이로는 20살이 되었다. 이제 twenty라고 말해야 한다.
다음주 월요일이면 우울증 관련 실험실에 봉사활동 인터뷰를 줌으로 본다.
키는 안 컸지만 마음의 키는 훌쩍 커버린 것 같다.
어제 언니에게 12시 땡하자마자 수다 떨다가 생일 축하를 가장 먼저 받았다.
가장 행복한 생일을 보내기 바라고, 최고의 남성을 만나 연애해라! 라는 (의역을 하자면)
메세지였다.
난 박수를 치며 "최고의 축하다." 라고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나랑 제일 열심히, 장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이미 나 자신과 권태기도 넘었고 이제는 벌써 21년이 되어서 누구보다 친한 걸.
애증했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이제는 사랑만 하려고 한다.
올해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
성경을 신약을 읽은 지 꽤 지났다. 현재 사도신경을 묵상하고 있다. 느끼는 건 내가 하나님한테 정직해야 한다는 것. 못난 내 모습이라도 내가 정직하기만 하면 고쳐주시기라도 하지. 내가 하나님한테까지 숨기면 그건 그대로 곪아 썩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웹소설 성적에 연연하던 내 생각을 고쳤다.
예수님은 내가 숫자에 목을 매는 걸 원하지는 않으실 거야. 그건 너무 작은 일이니까.
오늘 룸메 언니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바다! 왜 교회에 가야 하는지 알려줘!" 라고 물었는데, 깜짝 놀라서 "아냐아냐아냐 나 말 안 할 거야." 라고 웃으며 거절해버렸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난 여전히 배우고 있다. 자라고 있다. 이렇게 천천히 자라는 데도 함께 해주시는 예수님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님께 정말정말 감사한 오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