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한참 웹소설 필명에 대해 고민할 때 백운이라고 지을까 생각했었다. 그 당시 통유리 창문으로 하늘이 잘 보이는 도서관에 앉아, 흐르는 구름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멈춘 듯 보이는 하얀 구름들을 자세히 보면 분명 느리지만 어딘가로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도 멈춘 듯 보이지만 흐르고 있다. 지금의 시간은 헛되지 않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오늘도 나는 흘러가는 흰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다. 오늘은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까 점심을 먹고 소화시킬 겸 도서관에 갔다. 800이 소설인 건 어느 곳이나 비슷한 건지, 800을 찾으려고 보다가 그게 지하에 있다는 걸 알았다. 무슨 분류가 층 따라서 되어 있냐며 궁시렁궁시렁거리면서 엘레베이터를 탔다. 심지어 어느 방에 들어가야 그 책장이 있다고 떡하니 안내가 되어있어서 긴가민가 의심하며 들어갔다.
우리 학교의 도서관 책장은 신기하다. 최첨단이다 (내 기준에서). 버튼을 누르면 비밀의 책장처럼 기계가 움직이면서 책장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새로운 기능이 주는 흥미로움에 꽤나 만족하면서 곧장 해리포터를 찾으러 들어갔다.
무슨 분류가 4개나 있어, 속으로 생각하며 829.1을 찾고 R8333을 찾고 C3까지 찾았다. 그리고 hg 인지 hg+C인지 하는 것들 사이에서 찾다가 “복잡하기도 더럽게 복잡하네.”라고 중얼거리며 포기하려던 순간.
해리포터 엇비슷한 책을 보았고 해피로터는 바로 그 옆에 있었다. 해리포터를 빌리고 따듯한 햇살 아래 학생들 사이에서 걸어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득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길이길이 기억할 내 대학생활의 한 장면일 것이라는 걸. 그래서 바로 영상을 찍었고 가족에게 톡으로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님의 성화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걸 생각하다가 오늘 대충 3통의 투고 거절 메일을 받은 게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나는 이미 가진 건 감사하지 못하고 못 가진 것에만 집착하는 게 아닐까?
어머니께서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지금 하늘에서 독수리가 날아다닌다.
비행하는 독수리. 커다란 날개. 고고한 몸집. 그러나 분명히 살아있는 근육의 움직임. 자유롭게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그 모습을 보면, 어릴 적 본 독수리 모양의 연이 꽤나 실사와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주 까마득할 때까지 빙빙 돌다가 독수리는 또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걸 보는 내 목만 뒤로 꺾인다.
나는 홍콩에 와서 뚱뚱한 참새란 얼마나 귀엽고 앙증맞은가에 대해 알았다. 국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모든 걸 해결하는 마법의 문장도 배웠다. 어차피 우리 모두 다 그냥 사람이다, 이걸 외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한국인들에게는 그걸 외치지 못하는 내 못난 점도 알게 되었다.
걸핏하면 나는 내 나이는 포기하기 너무 이른 나이다! 라고 외치며 자신만만하게 실패에도 끄떡없다고 떵떵거렸다. 그러나 이른 나이인 건 맞지만 실패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주 다양하게 많은 걸 배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오늘 또 다른 것을 배웠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고.
방금 내 피드백 요청에 어떤 출판사가 상세하게 답장을 해줬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았던 건 계속 거절을 당해서가 아니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이 들어서 그랬던 거였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
그건 다른 출판사의 세세한 피드백 메일 하나에 이렇게 가뿐히 사라지는 것이다.
언제 절망스러웠냐는 듯.
오늘의 고민이 당장 4:30에 시작하는 수업에서 졸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것 하나와 저녁에는 뭘 먹는가 라는 것이므로 나는 꽤나 평화롭게 잘 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이루지 못하는 꿈을 보지 않고 지금의 하루를 살아야겠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