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솔직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잘 더듬어보았지만 예전부터 글에 대한 제 생각은 맹목적이었어요. 탈출구였고 재능이었고 지금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사랑. 아마 이게 사랑인가 생각했죠.
정말 사랑하면 더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하나하나 확인하고 싶어 져요. 사람이 아니라 무생물체에 이런 감정을 먼저 느낀 게 신기하기도 했어요. 웃기기도 하고 어쩌면 이게 내 천재성인가 싶어서 우쭐해지기도 하고요.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글을 쓰고 싶기는 해요. 근데 자꾸 쓸수록 내가 보이잖아요. 그게 싫어요. 남에게 맞추려고 하는 내가 보이면 너무 안쓰럽고요. 나만 아는 내가 보이면 숨기고 싶어 져요.
성공하고 싶죠.
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그것도 모르겠어요. 난 글을 너무 사랑하는데 모두가 내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글을 생각하지는 않는 거 있죠? 내가 틀렸나 의심이 들어요. 그리고 공감받지 못해서 외로워요. 나 혼자만 남은 기분이 들죠.
그래서 내가 사랑한 글들을 돌아보았어요. 따라 해보려고 했어요. 근데 이건 뭔가 아닌 겁니다. 제2의 누군가. 그게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확신은 아니고요. 그냥 그런 기분이요.
네. 제 기분이 그랬어요. 기분이요. 화가 났냐고요? 조금요.
돌이켜보면 전 참 변덕적이고 모순적인 사람이었고 어쩌면 지금 쓴 모든 말들이 다 제 조작된 기억일 수도 있어요. 그리 글을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글로 뭔가 이루어낼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던 중에 음악을 들었어요. 정말 자유롭고 개성적인 음악이요. 너무 자유로워요. 들으면서 화가 났어요. 동시에 너무 질투가 났어요.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어쩌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저런 글인가 싶었어요.
전 글을 정의하고 싶어 합니다. 탈출구라는 말은 너무 비겁해서 쓰고 싶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회피하며 살아와서 그런지 글이 고작 회피용으로 쓰이는 게, 좀 스스로 한심해 보인달까요? 이해해 주세요.
글을 정의하고 싶어 하는데요. 새로운 세계, 잘 꾸며진 방 등등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음악을 듣다 보니 이건 그런 작은 사이즈가 아닌 것이에요. 정의를 내릴 수가 없어요. 처음 지하철에서 들었을 때는 바에 앉아 있는 미스터리 하고 잘생긴 청년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나오는 거 아시죠? 정말 잘생기고 예쁜 인물이 나오면 주변이 자동으로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거 있잖아요. 슬로모션 딱 걸리고. 그 혹은 그녀의 얼굴에 클로즈업 샷이 걸리면서 그 사람만 보게 되잖아요. 음악을 듣는데 딱 그랬어요.
근데 지금 들으니까 사운드가 빽빽하게 차있는 게 얼굴을 연못에 넣은 것 같아요. 연못 밑에 처음 보는 물고기들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아요. 끔뻑거리는 눈과 얼굴에 닿는 물이 차갑고 모든 게 새로워요. 물방울이 코에서 숨을 참을 때 조금씩 떠오르는데 그 순간까지 계산된 일러스트 같아요. 빛이 물에 굴절되어 들어오는 게 너무 아름다워요.
물풀은 흔들거리고요. 난 이 청록색의 물 안에서 가만히 있어요.
혹은 갑자기 사막이 눈앞에 떨어져요. 그냥 새로운 세계가 피부로 확 와버려요.
너무 좋다는 말입니다.
welcome to the other world.
다른 세계로 온 걸 환영해.
그 음악가는 아무래도 다른 세계를 피부로 전달해주고 싶어 하나 봅니다. 아마도요.
난 뭘 하고 싶은 걸까요?
나도 다른 세계를 피부로 전달시켜 주고 싶은 걸까요?
그래도 내 마음을 쏟아내고 나니 시원하네요. 푹 자고 일상을 살아내다가 답을 찾으면 또 오겠죠. 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니 나를 꼭 기다려 줄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