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웹소설 퇴고하는 중
정말 쉬운 일이 없다. 정말정말 그렇다. 웹소설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한다. 왜냐면 할 얘기가 많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글쓰기 모집 글을 올렸는데 주최자가 좀 성실하게 글을 올려야 신뢰가 생기지 않겠는가. 당연한 사실이니 당분간 열심히 브런치에도 글을 써야겠다.
처음 웹소설 투고를 다짐했을 때는 15화를 언제 쓰냐 답답했다. 그런데, 이런. 다 쓰고 나니까 퇴고, 출판사 양식 설명서, 메일 보내기 등등의 과정이 더 커다란 산처럼 느껴진다. 당장 "보세요! 제가 쓴 글입니다!" 하고 시원하게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이게 약간 김이 빠진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더 조급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뭐든지 급하게 해서 좋을 건 없다는 걸 몸으로 배우고 있다. 정말 웃긴다. 많은 사람들이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던 걸 들을 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한 번 정신이 어지럽고나서야 뼈에 새기면서 교휸으로 삼는다.
더불어 알게 된 것은 뭐든지 쪼개서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오늘은 퇴고를 5,6화를 하고, 맞춤법 검사기를 1,2화를 돌렸다. 작은 일들을 하다보면 10일 후에 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밥 짓는 쿠쿠처럼. 뭔가 예정일이 정해져있다는 건 기대가 되면서도 약간 겁이 난다. 저 때까지 다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일단 지금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현재 쓰는 웹소설 원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이 다음에 쓸 걸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만큼 불행한 게 없는 것 같다. 현재를 즐길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을 즐길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퇴고와 맞춤법 검사를 즐길 것이다. 내가 걸어가지 않은 길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런치도 내게 고통이었다. 왜냐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조차도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꼭 써야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나는 글쓰기 모임 인원이 필요하고, 그 인원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주최자가 성실하다는 걸 강하게 어필해야 하니까. 성실하다는 거 티 내는 거 어렵지 않다. 꾸준히 하면 된다. 이를 악 물고.
아무튼 당분간 퇴고 끝내면 바로 브런치에 글을 후다닥 적을 것 같다. 이건 나의 글욕심이 아니라 동료를 구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고 하자.
아무튼 글 때문에 생각도 많이 했지만 결국 생각을 그만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알았다. 투고를 하는 것 뿐인데 그 과정에서 참 많은 걸 배운다. 이 교훈들만 건져도 이 도전은 아주 값어치를 하는 것 같다. 기분이 좋다.
홍콩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은 기말고사 기간이다. 어제 연속 두 개의 시험을 4시간 동안 봤다. 시험장에 앉아있으면서 시험을 보다가 체력이 떨어져서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실실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손은 바쁘게 시험지에 답을 적었다. 시험은 끝났다. 정말 첫학기 첫 수강이었는데 생각보다 배우는 기간이 짧다. 뭔가를 단숨에 배우는 것도, 소화하는 것도 어렵다. 정말 열정을 가지고 배우지 않으면 후루룩 사라질 것 같다. 현재 교양으로 듣고 있는 수업을 복습하고 있다. 아주 흥미로운 과목이다. 심리학 수업이고 가장 재밌게 보고 있는 건 선택에 관한 것이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완벽함을 찾지 말고, 내 기준에서 최고인 것을 찾는 게 더 행복하다. 그게 정말 맞는 것 같다. 그 수업을 듣고서 생각을 모조리 바꿨다. 사실 글쓰기에서 두려운 것도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던 간에 나는 완벽한 글을 만들 수 없다라는 절망감. 이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누가 완벽한가. 그리고 완벽함을 추구해서 뭐가 좋은가. 내 거 중에 최고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행복하기 위해 사는 인생인데 행복할 수 있도록 내 기준 최고를 추구하고 싶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원하는 건 "고치는" 것이다. 난 심리학을 공부해서 "고치는" 일을 하고 싶다. 글에 관해서는 "쓰고 보여주고" 싶다. 대학교에서는 "배우고" 싶다. 이 따옴표를 왜 붙였나면 최근에 유명한 한국의 심리학자 분의 세바시 영상을 하나 봤는데 동사로 내 꿈을 쓰면 그게 더 낫다고 했다. 근데 말이 되는 것 같다. 동사로 쓰면 참 말이 순수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단어들이 내 꿈에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덧입히고는 한다. 내 첫번째 꿈이었던 기자도 그랬고, 요리사도 그랬고 정신과의사도 그랬다. 의대를 가고 싶다 했더니 남들에게 오는 무한한 기대감. 심리학과를 가겠다고 하니 한국어 선생님이 직설적으로 말했던 "그거 돈 못 벌텐데?" 라는 말. 그리고, 실제로 심리학과 오지말라는 브런치의 포스팅들.
평생 다른 이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근데 대학에 와서 이 어마어마한 유학비를 내며 배운다고 생각하니 부모님에게 너무 미안햇다. 그러니,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다른 이의 기준을 내 것으로 가져오는 건 정말 고문이다. 너무 힘들다. 내 것도 아닌 걸 내 것인듯 끼워맞추고 나 혼자 힘들어해야 한다. 아무도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은 없다.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지만 아닌 것 같다. 인생은 행복한 것이지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현재는 그 영상에서 말했던 목표가 아닌 계획 세우기 방법, 10단계로 쪼개기 방법을 사용해 현재 기말고사 공부를 아주 수월하게 하고 싶다. 그래, 이거지. 이래서 내가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던 거지. 또, 르세라핌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심리상담 부분이 나왔다. 이때도 혼자 수긍했다. 그래, 나도 약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면 약은 필요하지 않지만 마음에 케어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그것의 수단이 상담이라면 상담도 배우고 싶다. 나는 "고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니까. 남들이 상담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 따위는 내 인생에 가져오지 말아야지. 도대체 나는 뭐가 되어 있을까? 어찌되었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필요한 곳에 내가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