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의 에피소드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는 않았다. 해마다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었고 서로의 바쁨 속에서 축하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 내민 남편의 봉투 하나, 돈보다 먼저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보였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수고와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한 고마움이 조용히 접혀 있었다.
2025년도에는 윤달이 있어서 음력 생일이 2026년도로 넘어왔다. 양력으로 하면 되는데 아무도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다.
사실 고백하자면 내 생일에 내가 밥상을 차린다는 생각이 조금은 서글펐다. 딸이나 며느리가 있다면 생일 밥을 얻어먹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스칠 때 마음 한편이 비어 왔다.
다행히 2026년 1월 달력 음력 생일을 남편이 동그라미 쳐놓았다. 생일 밥을 굶을 수는 없어서 간단하게 장을 보았다.
최소한의 미역국, 나물, 생선, 팥이 들어간 찰밥 정도로 간단히 하려고 했다. 그 전날 남편이 주방에서 미역국도 끊이고 생선도 구워야 한다면서 주방에서 이리저리 설쳤다. 괜히 주방을 맴도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생일날 아침 일찍 나물 몇 가지 무치고 생선도 손질하여 구웠다. 미역국도 끓여놓고 팥을 삶아 찰밥도 하면서 서글픈 마음을 차분히 달랬다. 평소에도 음식을 만들면 마음이 음식에 가기 때문에 할수록 마음은 차분해진다.
생일상을 다 차리자 남편이 조용히 내민 봉투 하나 " 따로 선물을 준비 못 했으니 이걸로 대신드리고 축하합니다." 남편의 투박한 말에 전날의 설침이 이해되었다. 속으로 감사하며 서운했던 마음이 기쁨으로 변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나 몰래 숨겨두었던 케이크까지 챙겨 왔다. 요즘 케이크 값이 비싼데 제발 사지 말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몰래 사두었던 것이다. 이왕 케이크까지 차렸으니 촛불을 켜고 축하 노래도 부르고 영상까지 찍었다. 남편은 이런 영상을 찍어서 꼭 큰아들한테 보낸다. 좀 있으니 큰 아들, 며느리, 손녀한테서 축하 인사가 왔다. 아들 며느리의 짧은 말에도 분명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생일은 참 묘하다. 2025년도에는 윤달 때문에 음력 생일이 아예 없었고, 그 생일이 2026년 1월로 넘어와 이제야 찾았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2026년에는 음력 생일이 또 연말에 한 번 더 있다는 사실이다. 한 해에 생일이 두 번이라니 참 희한하다.
그래도 좋다. 생일이 빠졌다가 늦게 오고 한 번 더 온다 해도 결국 나를 웃게 한건 날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남편과 작은 아들이 곁에 있어서 함께 축하해 준 이 하루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늦게 와도 좋고 한 해에 두 번 와도 좋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진 생일이라면.
나는 달력보다 사람을 믿게 된 하루에 조용히 깊이 감사한다.
내가 받은 것은 축하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가족이라고 해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선물이나 축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 작은 준비 속에 사람의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삶이 누군가의 마음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