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 3

제주도에서 온 밀감 한 상자

by 이정숙

며칠 전 밀감 한 박스가 도착했다. 문 앞에 놓인 밀감 박스를 보는 순간 누가 보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안부를 보내는 친구가 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밀감으로 안부를 전하는 친구이다. 밀감 상자를 열기도 전에 그 친구가 전해오는 안부말이 느껴졌다. 가지런히 누워있는 제주에서 온 자연의 밀감. 차가운 계절 속의 밝고 환한 노란빛이 제주의 햇살을 담은듯하다.


하나를 까서 입에 넣으니 찹찹합면서 상큼한 신맛 뒤에 단맛이 따라온다. 그 맛이 마치 친구가 안부를 물어주는 것 같았다.


겨울에 보내온 밀감은 늘 특별하다. 풍족해서가 아니다. 그저 나이 들어가면서 별일은 없는지 상대의 계절을 물어주는 것이다. 전화가 아니라 밀감으로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다.


이 친구가 보내온 밀감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제주도에서 밀감 밭을 하는 또 다른 친구를 돕기 위해 매년 이 일을 하고 있다. 해마다 제주도 친구의 밀감을 친구 몇 명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몇 년째 이어진 일이라 놀랍지는 않지만 밀감 상자를 여는 순간 친구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돈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일까. 자기가 농사지은 것도 아닌데 그 수고와 시간을 주변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보낸다. 누군가의 땀과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사람에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상자를 열면 밀감은 말이 없다. 밀감 상자 안에는 여럿의 마음이 놓여있다. 땀 흘려 농사지은 사람의 마음, 그 노고를 헤아려 주는 친구의 마음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주는 우리가 있다. 밀감 한 알 속에는 여럿이 담겨있어 그 맛도 여러 개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사람 사이의 선의가 이 겨울 풍경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이어오는 마음을 밀감을 통해 배우게 된다. 기량과 함께 좋은 태도를 갖춘 선수가 더 오랫동안 더 높은 몸값을 받는다고 한다. 실력은 엔진이다. 태도는 그 엔진을 돌리는 힘이다. 성공의 팔 할은 '태도' 다. 오늘 아침에 읽은 보도 섀퍼의 이기는 태도에서 본 내용이다. 이 친구의 마음과 행동도 태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작년 겨울에는 고마운 마음에 이 친구와 몇몇 친구들이 함께 밥을 먹었다. 특별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 자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밀감 이야기를 하다 웃고 각자의 근황을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 겨울에도 만나지는 못했다. 서로의 시간과 일상이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만나지 못해도 마음은 한번 다녀갔으니.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에는 '고마움'이라는 끈이 있다. 그 끈은 꼭 만나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밀감 하나 나누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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