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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Jan 04. 2023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2023년 새해와 만남에 대해


  새해


  2023년 새해는 여느 주말과 다름없는 짧은 연휴가 되었다. 그렇게 줄어든 연휴 탓인지 사람들의 만남도 줄었다. 조용히 지나간다. 어쩌면 당연한 모습, 부직포로 입을 가리고 눈으로 대화를 하는 시대의 얼굴이다. 얼굴의 반을 가려버리니 마기꾼이 되는 현상도 있지만, 그 이면엔 마스크와 칸막이에 막힌 말소리의 웅얼거림처럼, 눈만 보니 웃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는 것처럼, 나와 세상의 사이는 더 흐릿해졌다.

  예전부터 1인 가구,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들이 정착하더니 그에 박차를 가하듯 언택트, 비대면, 거리두기라는 미덕이 자리 잡았다. 패스트푸드점을 가면 키오스크라는 이름의 기계가 사람의 목소리 대신 나를 반기고,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면 말 없는 침묵 속에서 손가락으로 화면만을 터치한다. 점점 더 '남'에게 입 뻥긋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만큼 편리한 점도 있다. 키오스크를 통해 더 내 입맛에 맞게 주문할 수 있게 되었고, 주소를 잘못 듣고 배달하는 불상사도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줄어든 불상사만큼 늘어난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 마음의 거리다. 눈으론 보이지 않는 늘어난 마음의 거리를 숫자로 가늠해 본다.

  거리두기 시기, 정신건강의학과의 환자 수는 재작년 대비 10% 늘었다. 고작? 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병원 전체의 진료과 중 가장 독보적으로 늘었다. 바로 뒤를 따르는 피부과조차 +1%이고, 외과(-7%), 이비인후과(-25%), 소아청소년과(-36%) 등 병원을 찾는 사람의 수가 전체적으로 줄어든 이 시대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만 10%나 늘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깊다. 시대의 장벽을 뚫고서라도 마음의 아픈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겠다.

  하나 더 늘어난 숫자는 생을 떠난 이의 수다. 단, 조건이 있다면 연고가 없어 혼자 고독히 임종을 맞은 사람, 고독사에 대한 숫자이다. 2016년 무연고 사망자의 수는 1,820명이었고, 2020년은 2,880명으로 4년 새 58% 늘었다. 무연고 사망은 꼭 노인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30대, 40대 등 최근 들어서 그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무연고 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아무리 우리가 밀집하여 살더라도, 아무리 우리의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울지라도, 마음의 거리는 그것과 별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아무리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진 사회일지라도, 마음의 거리는 그것과 별개로 언제든 가까워질 수 있다는 반증이겠다. 또한 이러한 시기일수록 늘어나려는 마음의 거리를 더욱이 가깝게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먹구름 속의 빛줄기처럼, 이 필요성을 방증할 연구가 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거리두기 시기 한국인 5천여 명의 행복도를 지속해서 관찰한 결과, 친한 사람과 함께할 때 증가하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이전보다 훨씬 증가했다고 한다. 센터장 최인철 교수는 이를 '깊은 관계의 가치에 대해서 사람들이 돌아보게 된 것'이라 판단하였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의 가치가 빛을 보기 시작한 지금, 그리고 만약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남에 대해 깊게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만남이 희귀해진 지금이 아닐까.

  그래서, 관계란 무엇인가

  관계라는 것은 상대와 나의 만남, 나의 지평과 상대의 지평의 만남이다. 여기서 ‘지평地平,horizon’이라는 것은 자아의 세계이다. 빛, 소리, 냄새 등 세상의 어떠한 자극이든 세계는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왜곡되고 재구성된다. 이렇게 재구성된 주관적인 자아의 세계 범위를 ‘지평’이라고 하며 우리는 각자가 가진 고유한 지평 위에 서 있다.

  만남이란 나의 지평과 상대의 지평이 부딪으며 변화가 생기고 형태가 달라지는 사건이다. 상대의 지평에 발을 들여놓으며 나의 세계에는 없던 신비하고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내가 알던 세상이 모든 것인 양 생각하며 굳어질 때쯤, 상대를 통해 내 지평의 경계선이 깨어지는 순간, 그것이 만남이다.

  이 책의 저자가 재수학원에 다니던 시절, 연세가 많은 사회문화 강사가 강의 중 느닷없이 지식을 얻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였다.


  “별 모양의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별 모양의 지식이 담긴 책을 읽으면 될까요? 한 번에 읽으면 안 될 것 같으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별이라는 지식을 얻을 수 없어요. 지식은 그런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책을 펴야 해요. 삼각형이 그려진 책, 사각형이 그려진 책, 원이 그려진 책. 이런 책들을 다양하게 읽었을 때,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비로소 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삶도 그 별을 만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강사가 말했듯, 나에게는 없는 그 모양들을 만나야 한다. 삼각형을 닮은 사람을 만나고, 사각형을 닮은 사람, 원을 닮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렇게 삼각형을 이해하고, 사각형을 이해하고, 원을 이해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나는 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혼자선 할 수 없는 일종의 품앗이다. 서로서로 각자의 모양을 만들기 위한 협업이다.

  인간이 ‘人間’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서로의 지평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서로의 지평을 마주하게 되면서 각자의 지평은 더 다양해지고 더 넓어진다. 나의 지평은 내가 만난 이들의 지평에서 영향받은 것들의 흔적이고, 또 누군가는 나의 지평에서 영향받아 자신만의 지평을 이룰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의 지평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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