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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Dec 18. 2022

아낌없이 주는 나무

사랑이란 단어의 근원


  이 책은 내가 열 살 무렵 읽었던 책이다. 20년이 지나 뒤늦게 이 책을 다시 펼친 것은 가까운 친구의 영향이 컸는데, 그는 최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고 옛날엔 몰랐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고 하였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보다 훨씬 짧은 동화책이지만, 어렸을 적 몇 번이고 읽었던 게 생각이 나 다시금 읽어 보았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소년이 한 그루 나무와 만나며 시작한다. 소년은 나무를 좋아했고, 나무에서 그네를 타고, 숨바꼭질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소년은 어느덧 나이가 들며 어른이 되어 나무와 멀어졌다. 소년이 이따금씩 나무를 찾아 올 때면, 돈이 될만한 것들을 갖곤 금세 돌아갔다. 처음에는 나무에 맺힌 사과를 전부 가져 가더니, 나중엔 집이 필요하다며 가지들을, 그리곤 배 한 척이 필요하다며 나무의 몸통을 잘라 갔다. 그럴때마다 나무는 선뜻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밑동만 남은 나무는 자신이 소년에게 도움이 되었다며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잃은 것들 때문이 아니라, 소년이 찾아 올 때마다 그와 함께할 시간을 기대했음에도 소년은 항상 얻을 것만 얻곤 금세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소년은 노인이 되어 나무를 찾아 온다. 나무는 말한다. "얘야 미안하다.", "이제는 너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자 소년은 말한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조용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곳 뿐이라고. 그러자 나무는 말한다. "자,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나무 그루터기가 제일이야. 이리 와서 앉아." 그렇게 나무는 소년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소년과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었다고 한다. 거룩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 낭만적이고 성적인 사랑인 에로스, 서로가 잘되기를 바라는 우정의 필리아,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인 스토르게. 이 동화책 속 나무의 모습에서 나는 그런 사랑의 모습들을 부분부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우리들의 사랑을 이 네 가지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전부터 우리는 사랑이란 걸 해오고 있었기에, 그 색깔도 가지각색으로 사랑의 종류마다 고유한 색깔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노래와 연극 등에서 수없이 나오는 질문이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정답 없는 질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 정답 없는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나는 '사랑'의 어원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사랑, 愛

  한글 '사랑'의 어원은 15세기가 그 시초이다. 당시엔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그 의미 뿐만 아니라 '생각(思)', '그리움(慕)'의 의미도 지닌 다의어(多義語)였다. 당시엔 현대국어에서 의미하는 '사랑(愛)'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생각(思)'의 의미로 자주 쓰였다. 이러한 쓰임새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계속 이어졌으며 그 쓰임새가 현대의 쓰임처럼 '사랑(愛)'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게 되는 것은 17세기 이후였다.

  또한 한자 ‘愛’는 본디 '아끼다'는 의미였다. '愛民力(애민력)'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뜻은 '백성의 힘을 [사랑한다]'가 아니라 '백성의 힘을 [아낀다]'라는 뜻으로 추수철에 백성들이 곡식을 잘 거둘 수 있도록 다른 업무에 동원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한자 愛는 '아끼다'는 의미에서 시작하여 점차점차 우리가 쓰는 ‘사랑’의 뜻으로 변해갔다.


  사랑에 정답은 없겠지만 그 말의 어원들을 살펴보니 그 모습이 조금은 단순하게 보인다. 상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이 단어 속에 섞여 있었다.

  이런 면에서 다시금 살펴보면 나무의 감정도 또렷해진다. 소년을 아끼고,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나무의 행동에서 비추어진다. 나무의 아낌없는 모습은 속물적인 잣대로 들이댈 수 없는 숭고한 마음이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나무의 행동이 미련하게도 보였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렇게나 아낌없이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나무가, 그리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모습이 되려 부럽기도 하다. 아주 짧은 동화책이었지만, 어렸을 적에는 미련하게 보이던 나무가 어른이 되어 보니 내가 따를 수 없는, 그러나 따르고 싶은 숭고한 존재로 새로이 다가오게 되었다.


  이러한 나무와 소년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내가 소년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 떠오르는 건 역시 부모님이다. 자주 찾아뵙지도 않고, 연락도 뜨문뜨문하고. 영락없이 쌀쌀맞은 불효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잠시라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무처럼 모든 걸 내주기는 쉽지 않더라도, 모든 걸 아끼기만 한다면 볼품없는 그저그런 나무가 될 테다. 열매 하나 남에게 줘 본 적 없어서, 주변에 나 말곤 나무 한 그루 없는 공허한 곳에서 시들어가는 그런 나무가 될 테다.


  인생은 짧다. 그리고 내 삶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가족에서부터 직장 동료까지, 내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연 또한 하나하나 소중하다. 그들이 내 인생의 편린이 될 것이고, 그들에게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나는 변해간다. 그렇게 그 편린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내 인생의 페이지들을 채워갈 것이다. 그러니 내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연을 하나하나 소중히 하며 나무의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해 간다면, 내 삶 또한 이 책의 마지막처럼,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로 끝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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