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꼬박 만났다
0. 내 애인은 어떤 여자와 매주 월요일 점심에 만나곤 했다. 꼬박꼬박 만났다. 매번 샐러드를 먹는다고 했다. 질투는 이럴 때 부리는 건가? 중히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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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까운 이들에게 나는 대게 질투도 없고, 감정도 없는 인간이다. 작은 편도체로 태어난 게 분명하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뻤다. (편도체 크기 자체가 작으면 감정 인식 및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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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럴 때 질투가 요긴한 건지, 저럴 때 감정을 부리는 건지 찰나의 여백을 두고 고민해 본다. 사람들이 삐걱거리는 찰나를 알아볼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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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내가 진짜 질투할 때의 감각을 안다. 그것은 쥐가 심장을 가곰가곰 잘근잘근 씹어 먹는데도, 복강에서는 웃음이 빼어나오는 기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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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치광이의 애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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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국제도서전을 동행해 준 친구에게 책을 사줬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제목이 썩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다산 출판사에서 잉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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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곧장 필사까지 하며 읽기에 돌진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읽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해낙낙하다. 마지막 장에서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엄지손가락을 굽혀 미간을 짚었고, 고개를 숙였다. 다 큰 애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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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는 얼른 옆에 딱 붙어서는 어떤 문장이었냐 물었다. ’위로를 먼저 해줬어야 했나?‘ 사회인으로서의 자각이 지나갔으나, 시간은 자각을 앞선다. 그가 가리킨 문장을 소리 내어 같이 읽었고, 나도 울었다. 나도 울고는 분했다. 내가 준 책을 도로 뺏고 싶었고, 실제로 뺏어왔다. 내가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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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 책을 침대맡 위에 올려다 두고는, 다른 작가님의 책부터 집어 들었다.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들어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는 문장은 정확히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이다. 치사하다. ’어두움을 만드는 것은 전구‘라는 표현은 더 치사하다. 대극의 개념을 이리 쉽고도 세련되게 말하는 것은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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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읽다 말고 다급히 책 앞면과 뒷면을 뒤적거린다. 초판이 언제 인쇄됐는지, 현재 몇 쇄까지 발행됐는지 살펴본다. 69쇄라는 숫자를 보고 끄덕이며 질겁한다. 6969쇄였어도 끄덕였을 것이다. 1쇄와 69쇄 사이의 기간을 가늠하며 이 책의 밀도를 절절히 느낀다. 네이버에 작가 이름을 치고, 그 자리에서 그의 다른 책을 구매한다. 씩씩거리며 주문해놓고, 언제 오나 택배사 문자를 흘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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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질투가 그득그득한 이 세계가 좋다. 읽고 쓰는 세계는 무한하기에, 질투를 정복할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얘랑 평생 살면서, 비죽거리는 웃음을 참고 심장을 내어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