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게 말할 수 없었던 쓰기의 현실

정가로 팔 마음이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by 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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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때 썼던 글을 되돌아봤다. 체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번 세일이 진짜 진짜 진짜 마지막이고, 다시는 이 기회가 없을 거라는 공수표 범벅된 문장을 본다.


“딱 오늘까지만 최대 30% 할인”

“쉿, 고객님께만 드리는 비밀 쿠폰”

“딱 1시간만! 최대 ~67% 특가”


아침부터 소리치는 카톡을 여럿 받았다. 내 카톡은 읽지 않은 메시지가 항상 999+다.


매달 달성해야 하는 매출 목표가 있다면, 이를 달성할 즉각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뭘까? 말해 뭐하나 할인이다. 그래서 신제품 기획 시점부터 정가와는 별개로 할인가를 설정한다. 고객은 정가 6만 원을 보고 반값 할인의 3만 원 제품을 구매하지만, 사실 판매자는 3만 원짜리 제품을 3만 원에 파는 것이다. 미리 계산해두는 마진율도 정가가 아닌 할인가를 기준으로 한다. 정가로 팔 마음이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직업 고질병이 아직 낫질 않았다. 할인가가 곧 정가라 생각한다. 이벤트 종료 시간까지 카운트다운을 하는 시계도, 100개 남았다는 재고 수량도 별 의미 없음을 안다. 할인이 먹혀 있지 않은 브랜드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짱 없이는 정가에 못 파는 시국이다.


지금 체면 차릴 때야? 회사부터 살리고 봐야지. 맞다. 그래서 나도 잔말 않고 온갖 브랜드를 다 카톡 친구로 추가해두고, 내 눈을 사로잡는 첫 문장을 모아두고. 그리고 엇비슷한 카피를 날리지 않았었나. 샤넬은 할인을 하지 않는다는 뻔한 스토리를 풀고자 함도 아니고, 할인 이벤트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망상도 아니다.


전과 후가 뚜렷한 영상만 띄워도 터지던 시대도 가고, 최적화니 뭐니 했던 시대도 갔다. 내 시선에서는 그렇다. 피로함만 남았다.


그럼에도 팔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은근히 접근해 보고 싶다. 제품의 질은 다 고만고만해졌다. 상향 평준화된 시장에서 우리는 더 이상 기능에 열광하지 않는다. ChatGPT 같은 혁명은 예외다.


나는 혁명 없는 서비스와 제품을 팔아왔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게 무슨 혁명인가. 하지만 은근한 속도로, 스미게 파는 방법도 혁명의 축에 낄 수 있을까? 글쓰기와 같은 무형의 노동이 유형의 화폐로 경이롭게 교환될 수 있을까? 할인은 없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다 좋은데 비싼 게 흠인 글쓰기. 애플과 같은 글쓰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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