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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을 여럿이서 걸으면 길이 된다

by 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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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작업물에 대해 수십명의 팀장으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실시간으로 수정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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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작업을 한 명의 팀장님과 한 게 아니라요. 수십 명의 팀장님과요.


회사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분명 비효율적인 작업 방식인데요. 저는 이 방식을 통해 아찔한 성장을 만끽했습니다.


4월 1일, 책의 목차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수많은 선생님이 피드백을 해주시겠다고 발 빠르게 지원해 주셨어요.


일반적으로는 피드백을 모아서 한 번에 고치는 게 정석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분 한 분의 온기 담긴 피드백이 아까웠던 것 같아요. 실시간으로 목차를 고쳤습니다. 무엇보다 <목차>는 중요한 글이라 비효율적인 작업 방식도 고개를 끄덕일 만했습니다.


그리고 이 비효율의 파도 위에서 저는 2가지를 깨닫게 됐어요.



1. 가보지 않은 길을 여럿이서 걸으면 길이 된다.


최초로 <목차>를 접한 A 선생님이 왜 목차에 날짜가 포함되어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날짜에 맞춰 책을 읽어야 될 것 같다며 숨이 턱 막힌다고요. 저야 물론 날짜를 넣은 의도가 있었기에 날짜를 소폭 손질해 B, C 선생님께도 보여드렸어요. 하지만 각기 다른 업계의 세 분 모두 날짜에 대해 유사한 의견을 주시더라고요. 그럼 그게 길이라 인정하게 됐어요. 제 의도와는 별개로 특정 부분이 여러 명에게 거슬렸다는 거거든요.


예컨대, 제 직장 생활에서 주요 업무의 일부는 팀원이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것이었는데요. 그때 줄 간격이 안 맞거나, 폰트가 못생겼거나 하는 아주 사소한 어긋남이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그런 거슬림이 없어질 때까지 피드백을 안 줬어요.


미소한 거슬림 때문에 정작 핵심을 못 볼 수도 있다는 거예요.


물론 날짜가 이 책에서 아주 크리티컬한 요소고, 내 의도가 절대 수준이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갈 수도 있었는데요. 날짜에 그 정도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음에도 거슬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요.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을 관철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요.



2. 효율만 찾다가는 진부함에 갇히게 된다.


책을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함이 폭발할 때요. 대개 목차는 4개의 대목차와 그 안에 10개의 소목차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이드를 참고하곤 합니다. 가이드 없이 쓰면 산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피드백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효율을 위해 찾았던 가이드가 오히려 진부한 틀을 만들더라고요.


목차는 어디까지나 책의 지도 역할인데, 지도가 꼭 일정한 형태를 가져야 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대목차가 꼭 4개일 필요도, 소목차를 꼭 10개씩 맞춰야 될 필요도 없어요. 목차 안에서도 들여 쓰기를 이용해 연관성이 있는 목차끼리 묶을 수도 있고요.


제가 직장에서 화장품을 처음 만들 때가 떠올랐어요. 비전문가의 비효율적 시선이 유리하게 작용했지요. 그때 다른 제조사들은 어떻게 만드나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마케팅하나 기웃거리며, 이를 가이드 삼았으면 그저 그런 화장품을 만들게 됐을 거예요. 아찔합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쏟아지는 피드백을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나눌게요. 이 경험은 늘 사수 피드백 앞에 눈을 치켜뜨게 되는 직장인에게 마음을 담아 헌정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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