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그렇게 잘할 것 같으면 직접 하시지요
수요일은 상사의 중간 피드백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피드백을 조심스럽게 살펴봅니다. 뒤통수가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 숨 막히는 긴장감 … 속 … 정적.
“상사씨, 본인이 그렇게 잘할 것 같으면 직접 하시지요. 왜 저를 시키셨죠?”
이런 상황은 왜 벌어질까요? 거꾸로 나는 정당한 피드백을 줬는데, 상대의 반응에 눈치를 살피게 될 때도 있어요.
두려움 없이 피드백을 대하는 3가지 <분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가혹한 피드백도 눈 깜짝 않고 품위 있게 받아들이기 위해서요.
많은 경우 작업물과 내가 잘 분리되지 않아서, 피드백 미팅에서 감정선이 세한 곡선을 타는 거예요. 제가 화장품을 처음 판매했을 때 리뷰 하나하나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요. 내가 만든 제품은 곧 자식이고, 자식은 곧 나니까요.
제품은 단지 물건으로 여김직하지만, 글은 좀 다른데요. 글은 분리가 정말 어려워요. 글은 곧 제 생각이고, 생각은 곧 나니까요. 하지만 자식도, 생각도 내가 아니에요.
저는 의식적으로 <공동육아>의 개념을 기억했어요.
“내가 작업물을 낳았고, 작업물은 이제 독립된 개체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과 함께 작업물을 길러가자.”
작업물을 낳은 저와 피드백을 주는 사람의 목표는 동일합니다. 이 작업물을 잘 키우고 싶은 것. 그러면 긍정적이든 비판적이든, 함께 공동육아해 주는 이를 믿고 수정 작업에 임해야 하는 거죠.
“이 폰트 별로인데?"는 취향이고요. “이 폰트 모바일에서는 잘 안보이는데?”는 의견입니다. “이 목차 안 궁금한데?”는 취향이고요. “이 목차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돼”는 의견입니다. 취향도 경우에 따라 대중의 취향을 취해야 할 때도 있지만요. 결국 이 제품 또는 글을 만드는 자 또는 책임자의 취향을 맞추는 게 정석입니다. 하지만 의견은 두 번이고 귀 기울여야 해요.
저도 제가 제품을 책임질 때, 취향과 의견을 분리해 피드백을 전달하려 노력했어요. “X는 제 취향이니 그냥 맞춰주실래요? 동시에 Y는 제 의견이니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듣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주시고요.” 그러면 작업하는 사람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기준이 생겨요.
초안은 쓰레기지만, 초안만큼 만드는 이의 개성을 잘 안고 있는 안이 없어요. 따라서 초안은 항상 분리해 보관하고요. 모든 개선안을 따로 저장해 둘 필요는 없지만, 주요한 변화가 있을 때 버전 관리는 필수입니다. 최종본이 가까워지면, 초안과 개선안을 다시 짚어보며 “이전 버전이 더 좋았던 부분이 있는가?”를 점검해 보기도 합니다.
저는 피드백에 상처도 안 받고, 두렵지도 않다고. 제 글에 뜨끈한 피드백을 주신 모든 공동육아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 골자였는데요. 글이 길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