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연스러움은 글의 논리가 낳는 결과물입니다
팔리는 글에는 논리가 있습니다. 글에서 논리란 메시지와 가지런히 걸어가는 직선에 가까운 모양을 지닙니다.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서툴리 샛길로 빠져선 안됩니다. 메시지가 단 한 개의 문장이었다고 하면, 논리는 한 문장이 한 페이지가 되어도 한 문장만을 외치는 것입니다.
가령 <딸기 모자 아저씨>라는 메시지는 오직 딸기만 파는 상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얼마나 딸기에 몰두했으면, 딸기 모자까지 쓰고 딸기를 팔까 그 마음을 헤아려 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 가게에 들어갔더니 아저씨가 천혜향도 팔고, 망고도 판다고 해봅시다. 그럼 그 메시지의 힘이 조금 반감됩니다.
실제로 이 아저씨는 정말 딸기만 보고 사는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딸기 위에 키친타월을 덮은 후 비닐봉지로 밀봉해 냉장고에 보관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며, 제 뒤통수에 재차 설명하는 외침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딸기 박스에 빨간색이 그어져있다면 김영자 씨가 오늘 새벽 4시에 딴 딸기고, 파란색은 박수성 씨가, 초록색은 양진지 씨가 딴 딸기임을 정성스레 설명합니다. 딸기 모자 아저씨 다웠습니다.
더불어 딸기에 진심인 사람의 이미지는 딸기가 얼마나 맛있을지 마땅히 가정하게 합니다. 아저씨는 딸기가 맛있다는 것에 자신이 있는지 붉디붉은 딸기를 무료로 시식하게 해줍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흐름입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본인이 딸기를 노란색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만 떠든다고 생각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요지는 딸기만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는 딸기를 판다는 것 외 다른 부가적인 내용은 의도적으로 그 볼륨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천혜향을 같이 판다는 것도, 딸기가 노란색이라는 것도 버리거나 중요도를 낮춰서 다뤄야 합니다. 판매자는 내가 팔 수 있다고 다 파는 게 아니라 내가 팔아야 하는 것만 파는 겁니다. 물론 딸기 아저씨가 천혜향도 팔 수 있는 능력이 있겠지요. 하지만 딸기 모자 아저씨가 천혜향 대신 딸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생크림을 곁드려 판다면 보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겁니다. 이 자연스러움은 글의 논리가 낳는 결과물입니다.
제가 오프라인 가게가 아닌 온라인에서 이 딸기를 판다면요. 상세페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왜 딸기에 미치게 됐는지, 이 맛있는 딸기를 팔기 위해 지난 8년 동안 어떤 산전수전을 겪었는지, 이 딸기의 당도를 측정해 수치로 보여주고, 딸기 당도와 꿀의 당도를 비교하고, 딸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게 먹으려면 어떻게 보관해야 하며, 이 딸기만 찾는 분당권 딸들의 후기를 모아 쓸 겁니다. 주야장천 내가 딸기에 미쳤고, 이 딸기는 맛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지만요. 다른 각도에서 같은 말을 하는 거라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상세페이지를 읽고 나면 "와 딸기에 미친 사람이 파는 진짜 맛있는 딸기구나"를 혀가 먼저 느낍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과하게 압축해 메시지와 논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메시지는 제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한 문장이며, 논리는 이 한 문장을 한 페이지로 늘려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직선의 흐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