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아도 자꾸 생각나는 글

요리로 치면 소금을 치는 과정이에요

by 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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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든 세계. 독자가 이 세계에 완전히 몰입해, 문장을 맛보고, 만지고, 듣고, 보고, 냄새 맡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감각>을 담은 글은 독자를 글에 완전하게 참여시킴으로서, 기억하지 않아도 자꾸 생각나는 글이 됩니다.


글에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 관건인데요. "감각을 넣어야지!" 작정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글쓰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일단 쓰고요. 이후 수정 과정에서 감각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요리로 치면 소금을 치는 과정이에요. 요리하면서 처음부터 소금을 넣지 않고, 요리가 끝날 때 소금을 넣어 맛을 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을 점진적으로, 그리고 선택적으로 넣으며 너무 짜게도 싱겁지도 않게 간을 맞춰가야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아래 문장을 살펴봅시다.


10명은 되는 사람들이 내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나 혼자 밥을 먹은 지 10분이 넘어갔다.


문법적으로는 전혀 문제없는 문장이죠? 10명은 되는 사람들이 같이 식사를 했고요.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내가 식사를 마무리하길 기다리는 상황인가 봐요.


10명은 되는 사람들이 내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눈칫밥이 담긴 밥그릇에 수저를 긁었다. 달그락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내 쪽에서만 울린 지 10분이 넘어갔다.


방금 어떤 감각이 건드려졌나요? 청각입니다. 밥그릇에 수저를 긁는 소리가 뇌를 스쳤을 겁니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나를 10명의 사람이 쳐다보는 시선도 느꼈을 겁니다. 개선된 문장은 이전 문장보다 더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저.. 알겠는데, 달그락달그락 같은 문장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적을 것 같은데요? 그 마음 이해하고 말고요. 저도 감각 치는 건 잘 못하는 편이라, 평이한 문장을 적고 소금 치듯 고쳐나갑니다. 게다가 모든 문장에 감각 소금을 칠 필요도 없습니다. 독자가 기억하길 바라는 지점에 선별적으로 한두 번만 쳐도 충분합니다.


몇 문장 더 연습해 볼까요? 간단한 문장부터 연습해 나가면 언젠가 달그락 따위의 문장보다 더 유려히 감각을 자극하는 글을 쓰게 되실 겁니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 아침 6시가 되자 쌀쌀한 아침 냄새에 눈을 떴다.


어떤 감각을 건드렸나요? 아침 <일찍>보다는 아침 <6시>라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계 초침이 6시를 가르치는 모습을 뇌가 그려봤을 겁니다. 건조한 <아침>보다는 <쌀쌀한 아침>이 온도를 더해주죠. <일어났다> 대비 <눈을 떴다>라는 표현을 통해 감각의 정수인 <눈>을 직접적으로 언급해버리기도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했다. → 으르렁거리는 재규어 페달을 밟았다.


자동차를 운전했다는 문장은 그냥 스치기 쉬운데요. 으르렁거리는 재규어 차 페달을 밟는 장면을 청각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한번 떠올리게 한다면, 비교적 더 진하게 남는 문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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