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수 Mar 31. 2020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들인다는 것

그림책 교장선생님의 몽당연필(나태주)을 읽고

박웅현의 여덟단어 중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게 인생이다.



1.

작년 가을.

아침에 일어났더니 유난히 집안 공기가 싸늘했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리며 창문을 지그시 바라보니  예쁘게 물든 나무들이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하늘의 보이지 않는 손에 머리채를 잡힌 듯 흔들리던 나무들이 다소 지쳐 보였다.

세찬 바람들의 횡포를 창문 안에서 관전할 수 있어 심심한 감사를 느끼고 있을 때 뜬금없이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결국 9개월이 된 둘째 아이를 아기띠로 안은채 집 앞 상가에 있는 떡볶이집에 갔다.

얼마 전부터 애용하게 된 이 떡볶이집에는 1인 세트가 있다.

떡볶이 순대 튀김 2개를 섞어서 1인분으로 주는데 먹고 나면 떡볶이만 먹었을 때의 순대 하나만 찍어먹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없을뿐더러 너무 많이 남아 푹 퍼지게 되는 떡볶이들을 보지 않아도 되어 만족스러웠다.

나는 이 1인 세트가 얼마나 좋았던지 소풍날 아침 어린아이처럼 

"사장님, 1인 세트 메뉴가 너무너무 좋아요" 라며 뜬금없이 고백했다. 방정맞게 말해놓고서는 곧바로 민망했지만 떡볶이 앞이라 그마저도 괜찮았다.

평소에 살짝 까칠하신 사장님은

"1인 세트가 젤 싫어~ 순대 섞을건지 튀김 뭐할 건지 묻는 것도 입 아파"라고 하시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을 짓고 있으셨다.

이 떡볶이집은 아파트 나이만큼 딱 11년이 되었다.

하지만 떡볶이집에 들어서면 11년 된 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단정하다.

사장님은 꾸준히 닦고 관리하신다고 했다.

그냥 들어가 보기만 해도 사장님의 가게에 대한 애정이 반들반들 윤기 나게 느껴지는 곳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애정을 가지는 그곳의 떡볶이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적당히 단짠단짠 한 떡볶이.

상가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해있지만

그곳은 늘 참새들의 방앗간이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만든 1인 세트,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사소한 곳까지 사장님의 애정이 느껴지는 떡볶이집.

떡볶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떡볶이집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2.

남편과 햇수로 9년을 연애하고 2014년 12월에 결혼을 했다.

중학교 때 가정선생님이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결혼할 사람이라는 느낌이 '찌릿' 강렬하게 왔었다고 했을 때 그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었는데  나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같은 강렬한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일까 계속 만나보고 싶다."라는 강한 끌림은 있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끌림 끝에는  눈에 들어오는 사소한 행동 하나 가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 없는 장난감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듯 당시에 유난히 덜렁거려 소중한 것들도 잘 잃어버렸던 나에게는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그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영어학원에서 수강생들끼리의 모임에 처음 참석한 날

20대의 남녀가 10명이나 모여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미팅을 하고 있나 생각할 것 같은 그런 서먹하지만 묘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 즈음 그가 하고 있던 목걸이가 툭하니 떨어졌다. 그냥 평범한 패션 목걸이였다. 고리 부분이 헐거워진 듯 툭하니 떨어졌는데, 모두가 톤이 높아지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조용히 목걸이의 고리 부분을 조여 다시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매는 것이었다.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내 눈에는 사소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것을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눈여겨보았던 찰나의 순간에 대한 판단은 적중했다. 처음 보았을 에 대한 느낌이 13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할 줄 아는 사람이고 비싼 시계보다 편안한 시계를 오래도록 차고 다니며 자신에게 맞는 물건이면 아낄 줄 알았으며 무엇이든 고장이 나면 알뜰살뜰 고쳐서 오래도록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물건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이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그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물론 그의 매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나를 화딱지 나게 만드는 묘점이기도 하지만(속닥속닥)

그는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들인다는 것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출근하면 그날의 날씨나 미세먼지 상황 알려주기

퇴근 전에필요한 것이 없는지 전화하기

부모님들의 기차 예매 때에 순방향, 출구가 가까운 칸, 좌석의 안팎의 선호도까지 모두 살피기 등등

사소한 일이지만 그가 꾸준히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물건이든 사람이든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뒤집어서 보면 사람의 마음은 사소한 행동에서도 드러나기도 한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단조로운 나의 일상에 애정을 붙이고 나서 내 삶이 여기저기 반짝반짝 윤기 나기 시작했다.

새벽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도 좋고,

틈틈이 하는 독서도 좋고,

무기력해질 때면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 것도 좋고, 우리 가족이 함께 먹을 요리를 하는 것도 행복하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나서는 행복을 일상의 군데군데에서 곶감 빼먹듯이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그림'교장선생님의 몽당연필'이라는 책에서 와 닿는 구절을 써본다.



사랑은 오래된 것을 잊지 않는 마음이란다.
처음 가졌던 마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키는 마음이기도 하지.
그리고 작은 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이기도 하단다.
그리고......
그리고 말이야.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란 사람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거란다.''


교장선생님의 몽당연필 중 :)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오늘도 나의 일상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여기저기에서 행복을 찾아서 음미하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흔들리지 않는 나이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