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선물

by 남새

“언니야, 엄마 생일 잊어 버렸제?“

“엄마 생일?”
엄마야!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엄마 생일을 잊어버렸다. 요양원에 3년째 계시는 멀쩡히 살아있는 엄마 생일을 내가 잊어버린 것이다.

엄마 생일은 섣달 스무 여드렛날이다. 설 목전이 생일이라 늘 일찍 부산으로 내려가 엄마 생일을 했었는데 올해는 부산 큰댁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설을 보내느라 감쪽같이 잊어버린 것이다. 엄마가 건강하시다면 당연히 부산으로 내려갔을 테고, 만약 일이 있어 내려가지 못하더라도 선물이나 용돈은 보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처럼 잊어버릴 수가 있었을까?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고운 것을 참 좋아하셨다.

곱게 화장하고 꽃무늬 셔츠나 원색 바지를 입은 엄마가 눈에 선하다.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조차 ‘이뿌이 할매’의 명성에 걸맞게 화장을 해야만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였다. 화장해라, 고운 옷 입어라, 이제 엄마 옷 말고 니 옷 좀 사 입어라, 멋 부리기를 잘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채근하기도 했었다. 그런 엄마였기에 화장품과 옷 욕심이 유난히 많았다.

엄마, 이번 생일에는 뭐 해 줄까? 하고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응, 립스틱도 다 써가고, 파운데이션도 다 써간다.”

“그거 새로 사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다 썼나? 엄마가 연예인이 가? 무슨 화장품을 그리 많이 쓰노?” 나의 타박에도 만개한 꽃처럼 웃던 엄마였다.

한 번은 여동생이 전화를 해서 푸념을 한 일도 있었다.

“언니야, 엄마가 내 영양크림 다 퍼갔다. 어제 엄마가 우리 집에 왔다 갔는데 아침에 보니 영양크림을 반이나 넘게 다 퍼가고 없다. 그거 비싸서 아껴 쓰는 건데.. 내가 엄마 때문에 몬 산다. 딸내미 화장품 훔쳐가는 엄마는 세상에 우리 엄마뿐일 거다.”

그때도 엄마는 꽃같이 웃었다.


맨 처음 골프웨어 티셔츠를 생일 선물로 드렸을 때, 엄마는 이렇게 좋은 면으로 만든 티셔츠는 처음 입어본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그 말에 당시 오만 원이 넘던 티셔츠 몇 개를 한꺼번에 사느라 목돈이 들기도 했지만, PING이라고 새겨진 노란색 티셔츠는 양쪽 팔목 고무줄이 다 헤지고 늘어나도록 엄마의 사랑을 받았다. 아프기 전 십여 년 동안 엄마는 자신의 멋을 마음껏 뽐내고 지금이 일생에서 제일 행복하다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었다.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길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매일 화장하고 고운 옷을 입고 머리에 구리뿌(creep)를 하던 ‘이뿌이 할매’ 우리 엄마가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있다. 내가 예쁜 옷을 입고 가면 기뻐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면 나무라던 엄마는 자신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머리를 하고 있는지,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도 모르는 채 안개 자욱한 자신만의 세상에서 헤매고 있다.

엄마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아버지랑 둘이서 자주 가던 지리산 온천으로 가는 중일까? 분홍 모자 쓰고 파란색 잠바 입고 친구들과 봄꽃 구경 가는 중일까?


앙상한 두 손을 배 위에 올린 채 평온한 모습으로 잠이 든 엄마를 가만히 바라본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는 엄마. 눈을 감고만 있을 뿐 잠을 자는 건 아니라는 엄마. 눈을 뜨면 생시 같고 눈을 감으면 꿈속 같다는 엄마. 그 긴 하루 동안 아무 생각 없다고 말하는 엄마. 걱정 없는 지금이 제일 편해서 좋다고 말하는 착하고 순한 우리 엄마.

“엄마, 눈 떠 봐. 엄마 생일이라 예쁘게 화장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 입고 왔는데, 함 봐라, 엄마 큰 딸 예쁘제?”

뽀얗게 분을 바르고 새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꽃 분홍 셔츠를 입은 나는 엄마의 생일 선물이 되어 엄마에게로 몸을 낮춘다. 눈을 번쩍 뜬 엄마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감정이라곤 배어 나올 것 같지 않던 말간 얼굴에 기쁨이 피어난다. 눈도 웃고 입도 웃는다. 나는 엄마를 가만히 안는다.

엄마, 미안해 엄마 생일 지났는데 내가 잊어버렸네, 나는 나쁜 딸이다 그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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