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주가 되어 간다. 아버님과 합장한 묘지가 부산에 있어 나는 장례식 이후 가보지를 못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조만간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시어머님은 생전에 꽃을 좋아하셨다. 시집가서 처음 함께 살았던 아파트 베란다에는 갖가지 종류의 제라늄이 사시사철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약간 역겨운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서 나무처럼 자라나는 제라늄을 가꾸는 것이 어머님의 취미였다. 그 집에서 이사를 한 뒤에도 그때처럼 많은 제라늄은 아니었지만 몇 개의 제라늄 화분은 늘 어머님과 함께 했다.
어느 때는 교회에서 하는 꽃꽂이 강좌에 다니기도 하셨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손끝 매운 시어머니의 작품 같은 꽃꽂이가 한동안 거실 가운데를 채우기도 하고,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가셔서도 한 두 송이 뽑아 와서 당신 방에 꽂아 두시고는 행복해하던 모습도 기억한다.
나는 꽃을 좋아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묘지에 꽂을 예쁜 조화를 미리 사두기로 마음먹었다. 공원묘지 입구에 파는 꽃은 너무 원색적이고 화려하기만 해서 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지 않았다. 얼마 전에 새로 생긴 조화 도매상이 생각나 당장 준비하기로 했다. 막상 마음을 먹고 보니 어머님 산소에 꽃을 꽂을 자리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에게 시동생한테 받은 묘지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사진이 전송되어 왔다. 봉분이 동그랗게 잘 얹혀 있고 누런 잔디도 드문드문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사진을 손으로 펼쳐 보았다.
세상에, 시부모님 묘지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봉분할 때 흘러나온 듯한 흙조각들만 나부낄 뿐 장례식 때 북적이던 그 많던 사람들의 손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함께 찍힌 다른 묘지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화려하게 자랑하고 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시동생이 가 봤다며, 형님도 가 보셨다며, 그런데 어떻게 꽃 한 송이를 꽂아 두지 않았나, 어머님이 꽃을 얼마나 좋아하셨는데…다른 묘지에 비해 흙도 엉성하고 잔디도 엉성한데 꽃 한 송이조차 없으니 쓸쓸하기 이를 데가 없어 보였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요양원에서 혼자 외로우셨을 텐데 지금까지도… 연민과 서운함이 함께 밀려왔다.
나는 당장 조화 도매상으로 갔다. 조화가 엄청 많았다. 꽃들도 다양하고 재질도 다양하고 생화인지 조화인지 모를 정도로 생동감 있는 꽃도 있었다. 더러 어떤 꽃은 생화보다도 더 이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꽃들 속을 얼마나 헤집고 다녔던지. 처음 사는 조화에다 처음 만들어보는 꽃다발이라 얼마나 많은 꽃을 주물렀는지 모른다. 원래 감각적이지 못한 사람이라 더 힘들었지만 어머님께 드리는 선물을 고른다 생각하고 오랜만에 가격표를 보지 않고 꽃다발을 만들었다. 계산을 하기 전 점원에게 물었더니 잘 만들었다고 했다. 으레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당장 다음날 차표를 예매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과일들을 준비했다. 천혜향, 사과, 곶감, 초콜릿, 그리고 소주 한 병이면 될 것 같았다. 가방에 과일칼을 넣고 꽃의 길이를 조절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펜치도 넣었다.
장례식이 얼마 전이었는데 묘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시립공원묘지라 크기가 어마하긴 했지만 분명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가면 또 다른 곳이었다. 결국 공원묘지 사무실에 전화를 하여 주소를 받아 찾을 수 있었다.
40년 전 매장한 아버님 유골을 화장하여 어머님과 함께 합장한 묘지는 방금 봉분한 덕분에 다른 묘지들보다 봉긋한 모양이라 한눈에 들어왔다. 휑하던 묘지 앞에 생생한 흰 국화가 한 다발 놓여있었다. 꽃도 하나 없이 불쌍하다고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출장 중이던 남편이 다녀간 것이 분명했다. 한 송이씩 포장된 꽃을 은박지로 손잡이만 대충 싼 것 같은데, 어디서 사서 얼마나 들고 왔는지 은박지가 너덜 해져서 곧 풀릴 것 같았다. 이래저래 급했던 모양이다. 임시방편으로 나무젓가락의 비닐포장지 두 개를 묶어 꽃다발을 단단하게 싸매서 어머님 앞쪽에 세웠다.
어머님, 잘 지내셨어요? 40년이 넘도록 기다리신 아버님을 뵈니 좋으시죠? 이제 덜 외로우실 것 같아 저도 마음이 조금 편안하네요. 어머님, 다들 묘지 앞에 꽃들이 흐드러졌는데 어머님만 꽃 한 송이 없어서 많이 속상하셨죠? 어머님이 꽃을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꽃, 흔한 꽃 아닌 예쁜 꽃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이쁘게 장식해 드릴 테니 꽃구경하세요.
가지고 간 조화는 키가 커서 길이를 조절해야 했다. 다행히 줄기마다 움푹한 마디를 만들어 잘 자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아 반갑기는 했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았다. 양손으로 펜치를 잡고서도 몇 번이나 있는 힘을 줘야 하니 한참만에 꽂을 수 있었다. 묘지 양쪽에 양귀비와 장미, 안개꽃 등으로 만든 키 큰 꽃을 꽂으니 묘지가 화사 해졌다. 가지고 갔던 음식을 올리고 소주도 따랐다. 그리고는 절을 했다.
어머님, 아버님 편안한 잠에 드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는데도 먼 길이라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남편은 출장에서 돌아와 있었다. 흰 국화를 둔 사람은 남편이 맞다고 했다. 나는 오늘 하루 일정을 이야기했다. 다리도 만지고 허리를 펴기도 하면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우리 엄마는 조화 안 좋아하는데, 생화를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