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과 겸상

by 남새

새벽 6시쯤이었을까?

다락방에서 자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작은 소리들이 따라갈 사라락 올라왔다. 이른 새벽이라 조심하는 듯 여겨졌지만 작은 공간이라 숨길수가 없었다. 일어날까? 모른척하고 더 잘까? 그러다가 급히 몸을 일으켜 내려갔다.

산청의 내 작은 놀이터 집에 아버지가 와 계신다. 아버지는 이미 믹스커피 한 봉지를 타서 마시는 중이셨고 다른 손에는 TV 리모컨을 들고 계셨다. 일찍 잠이 깬 아버지는 tv 보는 일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심심해 보이는 아버지를 위해 나는 아침산책을 제안했다. 흔쾌히 따라나서신다. 초여름이긴 하나 아침햇살이 없으니 산골의 아침은 제법 쌀쌀했다. 추울까 봐 겨울 스웨터까지 입혀서 마을 산책을 나섰다. 발가락엔 통풍을, 다리엔 하지동맥질환을 앓으시는 아버지는 걸음걸이가 불편하시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걷는 걸음이니 산책이래야 서너 집 건너 작은 도로까지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집 밖을 나서니 온 몸을 깨우는 신선한 공기가 쏟아졌다. 초록은 밤새 조금 더 짙어졌다. 나는 선뜻 아버지 팔짱을 꼈다. 원래 곁을 주지 않는 아버지였기에, 아버지 무릎에 앉는다든지 아버지께 응석을 부린 기억이 없다. 아버지와 나는 손을 잡은 기억조차도 없었지만 아버지가 걷는 일이 불편해진 이후로 가끔 팔짱을 낀다. 잘 안 들리는 귀 때문에 내 목소리는 높아지고 두 번 세 번 거푸 말해야 하지만 아버지는 팔을 맡긴 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는다. 천천히 걷는다. 열 걸음도 못 가서 쉬어야 하는 아버지의 걸음을 맞추다 보니 그 옛날 결혼식 때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입장하던 일이 떠올랐다. 젊고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걸음도 편하게 걷지 못하는 늙은 아버지로 변했지만 나는 지금의 아버지가 그때의 아버지보다 오히려 더 편하다.


누구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없던 ‘철없고’ ‘이기적’이던 아버지는 젊은 날, 엄마와 우리 4남매를 힘들게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나는 결혼식 날 난생처음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 그날 웨딩마치를 따라 아버지로부터 도망 칠 수 있었다. 오늘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걷는 이 느린 걸음은 그날의 날렵하던 걸음보다 훨씬 행복하다. 비록 여전히 자신밖에 모르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지만 스러져가는 삶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부모라는 말이 주는 애틋함만으로도 이미 다정하다.


아버지와 나는 누룽지를 끓여 동그란 교자상에서 아침을 먹었다. 가끔 틀니 소리가 달그락 들리기도 하고 헛기침도 하셨다. 연신 입을 닦으시면서 맛있게 드신다. 문득 어릴 적 시골 아침밥상이 생각났다.

시골에서 아버지는 할머니와 두 분이 따로 밥을 드셨다. 네모난 작은 밥상에 정갈하게 올라간 반찬들, 구색 맞춘 밥그릇과 국그릇, 김이 모락모락 나는 투명하고 기름진 쌀밥과 따뜻한 국으로 뜨뜻한 아랫목에서 드셨다. 엄마와 우리 사 남매의 밥상은 조금 더 크고 둥근 밥상이었으며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문 입구에 차려졌다. 질서 없는 그릇들에 투박하게 담긴 반찬들로 보리가 조금 섞인 밥을 먹으면서 나는 아버지 밥상 위의 김과 계란이 얼마나 남았는지 늘 곁눈질을 했었다. 감히 아버지와 할머니의 밥상을 넘보는 짓은 불경스러운 일 데도 말이다.


이제는 아버지와 겸상도 하고 팔짱도 자연스럽게 낄 수 있다. 아버지와는 늘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나약해지고, 나는 강해지는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금은 그 거리가 없다. 사라져 버린, 아쉽지도 않았던 아버지와의 거리가 오늘 아침밥상 위로 불쑥 떠올랐다. 그리움인지 애잔함인지. 훅,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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