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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결 Jun 07. 2024

우리는 꽃을 좋아한다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

우리는 꽃을 좋아한다 말할 수 있을까.


내게 무엇인가를 좋아하다는 것은 그에 수반되는 고됨과 노고마저 너그러히 품는 태도를 지닌 것이다. 섭리처럼 뒤따르는 힘듦마저 부정하지 않는 마음이다.


내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며 가장 절실히 느낀 것이자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빵 만드는 일은 새벽 2,3시 출근은 흔한 일이요,

못해도 12시간은 일하며,

노동의 밀도는 그 어느 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높다.

그런데 급여는 적다.

이 모순 같은 일의 특성이 내게 속삭이는 것은 무엇일까.  


이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이 일이 즐거우며 좋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 이 일을 하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방도가 없다.


그러기에 내게 빵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제와 내일 그 어중간한 경계선에서 하루를 시작하는것을, 집보다 오랜 시간을 머물러 간혹 집으로 착각하게 되는이 공간을, 빵의 가장 맛있는 발효지점을 포착하여 구워내려는 분주한 발걸음과 흐르는 땀방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장에 찍히는 터무니없는 월급을 이 일의 순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나의 마음은 아직 수많은 힘듦에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


혹여나 내가 이 일을 그만두는 결심을 내린다면, 이 일에 대한 나의 애정이 딱 여기까지인가보다 라는 태연함으로 받아들여질것 같다.


그저 빵 반죽을 그럴듯한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이 일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빵 만들기의 조그마한 단면에 불과하다.


꽃도 그러하지 않을까.  


플로워리스트가 만들어주는 고급진 꽃다발을 좋아하는 것은, 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는 것은, 꽃이 주는 순간의 설렘을 좋아하는 것은, 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슈퍼에서 과일 옆에 덩그러히, 무심히 놓여진 꽃 한송이를 유심히 보는 마음이, 꽃의 생명 그 끝까지 정성과 애정을 다하는 마음이, 순간적인 설렘이 식은 후에 찾아오는 긴 잔잔함마저 좋아하는 마음이, 꽃을 좋아하는 마음 아닐까.  


우리는 무언가의 어느 일부분을 좋아하는 것을,  

그것을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좋아한다는 언어에 옳아매진 어떤 일일수도,어떤 사람일지도, 어떤 사물일지도.  


어쩌면 그것을 얼마나 즐기고 좋아하냐 보다, 뒤따르는 어려움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가가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적확히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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