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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결 Jun 07. 2024

Chest 船堀

빵과 와인 상담소

인력(人力)이 인력(引力)이다.

引力은 물체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人力은 사람의 힘을 뜻한다.무엇인가를 매개로 대상을 끌어당기는것은 결국 사람인 것 같다.

가끔 매섭게 나를 끌어당기는 빵과 빵집을 조우한다.

오늘도 예외 없이 애정 하는 한 빵집에서. 3시간 동안 선채로(타치노미, 立ち飲み) 빵과 와인을 즐겼으며

계산을 하려 하니 금액은 10만 원.

다시 말하지만 빵집이다.

그렇다. 난 무엇인가에 끌어당겨졌다.

어떠한 저항도 하기 싫은 무엇인가에.

*타치노미(立ち飲み).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문화로, 일본의 버블경제 이후 장기간 이어진 불황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한다.

불안한 경제에 위축된 경제심리에 퇴근 후 간단히 한잔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여느 공간이 그러하듯, 빵집도 얕음이 느껴지는 곳과, 깊음으로 다가오는 곳이 있다. 그 진중한 깊이감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화려한 인테리어, 유려한 모양의 빵, 높은 가격대, 좋은상권, 수십 년의 시간을 견뎌온 역사, 셰프의 화려한 경력 등 다양한 요인의 후보군이 떠올려진다. 허나 답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만드는 이의 치열한 고민, 진심, 그리고 잘 증류된 지향점과 철학이 가게의 분위기와 빵에 온전히 스며들어 손님에게 적확히 전달되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어쩌면, 마음까지 와닿을 수 있는 건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좋은 빵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한 것 아닐까. 고도의 기술과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은 손님의 입으로 하여금 맛있는 미각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나는 보다 깊은 곳 어딘가에 닿고 싶다.

그것이 울림을 발(發) 하는 '마음'이라는 모호한 지점일지라도.

Chest는 그 어느 곳 보다 짙고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빵집이다. 아니, 스스로를 '빵과 와인의 상담소'라 지칭하니 빵집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는 것은 옳지 않겠다. 아니, 모든 걸 떠나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그저 빵집이라기에 너무도 농밀했다.


이곳의 빵이 그렇게도 유별나게 맛있던가? 독보적이던가?라는 물음에 선뜻 긍정하진 못한다. 그럼에도 이곳이 많은 손님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미적 경험 이상의 것을, 자신들의 지향점과 철학을 손님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일 테다.

공간에게 플러팅 당한듯한 이 황홀함.

남은 빵은 냉동고가 안락하게 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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