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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도사 Sep 16. 2022

불온한 희망으로 황량한 세계 버텨내기

김보영,〈버킷 A Guitar in the Bucket〉(2021)

* 제24회서울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관 온피프엔에서 관람하고 씁니다.

* 작품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 스틸컷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버킷〉, 불온한 희망으로 황량한 세계 버텨내기

 Boyoung Kim, A Guitar in the Bucket (2021), 15 min.


김보영 감독의 〈버킷 A Guitar in the Bucket〉(2021)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단 하나의 꿈을 꾸는 소녀를 그린다. 옷과 음식은 물론 접이식 집과 샤워부스, 걷기동반자와 반려동물까지. 드림시티는 자판기에서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뽑아쓸 수 있는 곳”이다. 소녀를 포함하여 이곳에서 머무는 사람들은 몸의 반도 되지 않은 크기의 버킷에 ‘자기만의 것’을  넣어 짊어지고 다닌다. 소녀의 짐은 오직 기타 하나다. 이토록 꿈 같고 편리한 도시에서 어째서 소녀는 자기만의 것을 고집할까.


드림시티에서 소녀는 기타리스트를 꿈꾼다. 이 도시는 분명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곳”이라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소녀는 기타 플레이어로서 자판기에 올라가지만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다. 기타교본을 사려던 소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언어 강의에 코인을 쓴다. 드림시티답게 강의 주제도 “꿈”이다.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묻는다.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소녀 옆 할머니가 대답한다. “발레리나.” 강사가 다시 묻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오늘은 요리를 합니다.” 할머니는 소녀의 예견된 미래 같다. 몇 초도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불안감이 스쳐 지나간다. 소녀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이제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일을 이야기할 차례다. “운전을 해요.”


소녀의 희망은 그녀의 연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음악도시로 떠나는 것이다. 따스한 색으로 가득 찬 풍경 사이로 오동통하고 귀여운 3등신 캐릭터들이 아장아장 걷는 모습은 동화 속 세상 같아서 소녀의 꿈이 이뤄질 해피 엔딩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소녀는 짧은 하루 동안 생활에 필요하지도 꿈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도 않은 일들에 5코인이나 소모해버린다. 10코인이면 100명의 관객들이 보장된 음악도시로 이주할 수 있다는 전광판 광고가 화면에 비춰지는 순간을 기점으로 〈버킷〉은 한 단계씩 차근차근 소녀의 꿈을 망쳐놓는 것 같다. 이제 소녀가 코인을 쓸 때마다, 관람객은 마치 캐주얼 게임에서 여러 개 목숨이 하나씩 소진되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1코인=1목숨이라는 공식은 작품 안에서도 증명된다. 체험공원에서 안내인 일을 하던 소녀는 순간적으로 환상을 본다.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되듯 사람들은 우우수 떠밀려 자판기를 짓고 코인을 뽑기 위한 등가물이 된다. 귀엽게만 느껴졌던 3등신 캐릭터들이 새삼 머리-상반신-하반신 곡선과 비율이 비슷한 개미떼처럼, 혹은 언제든 교환가능한 부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내 정신을 차린 소녀가 손님에게 코인을 받을 때, 손님의 버킷에서 모니터가 떨어져 깨진다. 코인은 바로 그 손님과 등치된다. 화면이 소녀의 손바닥을 비출 때 그 위에는 손님이 올려져있고 곧이어 깨진 유리조각이 보여진다.


〈버킷〉은 짧은 러닝타임 동안 수많은 상징과 복선으로 가득한데 그 가운데서  깨지는 장면들의 반복은 특히 흥미롭다. 소녀가 기타리스트 팻말을 목에 걸고 상품으로서 자판기에 스스로를 가뒀을 때 누군가 전광판을 깨뜨린다. 소녀가 환상을 통해 드림시티의 착취적인 구조를 엿본 즉후 손님의 꿈인 모니터가 깨진다. 결말에 이르러 소녀는 드림시티의 전광판을 깨부수며, 깨짐을 지켜보던 관찰자에서 벗어나 주체로 거듭난다. 코인을 모아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시스템에 순응하던 소녀가 그 구조에 의문을 품은 끝에 저항하길 선택한 것이다. 이 순간을 드러내기 위해 작품은 대사나 독백을 가져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무언가 깨지는 장면들을 통해 날카롭게 돌파한다. 


결말 부분에서 소녀는 버킷을 버린다. 정확히는 버킷을 내던져 “뭐든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드림시티의 프로파간다를 깨부순 것이다. 소녀는 두 줄이 빠진 기타를 메고 강아지를 끌어안고 도시를 떠난다. 그렇다면 코인을 모아 음악도시에 가겠다는 목표를 깨버린 소녀에게 무엇이 남을까. 상반기 내내 〈버킷〉을 보며 던진 질문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꿈을 위한 여정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그후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을 볼 때마다 자본과 노동, 꿈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이주, 저항,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버티는 삶 등  새롭게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 끝에 소통을 위한 장치가 끊임없이 발견된다는 것에 놀랐다. 어쩌면 소녀가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이유 역시 음악을 통해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려는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소녀가 써버린 코인 중 다섯 개는 다른 존재들과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첫번째, 잠을 잘 때 동반자를 곁에 두기 위해. 둘째, 이동할 때면 걷기 동반자와 함께 하기 위해. 셋째, 예정에 없던 언어교육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호응하기 위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눈에 밟히던 강아지를 뽑고 돌보기 위해. 심지어 강아지를 위해 소녀는 기타 스트링을 팔아 코인을 뽑기까지 한다.


홀로 잠에서 깨어나며 걷기 동반자가 아닌 효율적인 운송수단을 선택하고(혹은 혼자 걷고), 기대에 찬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타인의 웃음에 응답하지 않고 강아지에게서 전해진 온기를 지나친다면 소녀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음악도시로 이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기꺼이 목표를 늦춰간다. 그저 연주기술이 좋은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기에 소녀의 희망은 불온하다. 타인에게 궁금함을 느끼고 말을 걸면서 코인의 등가교환 법칙 밖으로 자꾸만 빠져나가려고 한다. 작품 전반에 흩어진 소통의 실마리들은 이 작품을 계속 보게 하는 힘이 된다. 돌보고 소통하는 행동마저도 유료화되고 그 비용을 개인들이 치르게 된 세상. 꿈이 자본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는 세상. 〈버킷〉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압축한다. 버거운 규칙들을 따라가기 힘든 현실에서 이 작품은 꿈을 좇는 이들에게 응원을, 단절을 느끼는 이들에게 연대를 전한다. 




〈버킷〉은 올해 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귀엽고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상반기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바쁘기도 했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미루고 있었는데 가볍게 정리해봅니다. 아래는 글에 넣기엔 비켜나가는 단편적인 감상들.


0.

작품의 샌드위치가 굉장히 신선하고 맛있어 보였어요. 어쩜 샌드위치와 우유를 이렇게 프레시하게 그리시지.


1. 상품가치와 화폐가치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소녀의 환상체험 장면. 자본론을 극대화시켜 애니메이션으로 옮겨놓은 휠. 감독님은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 정도까지만 염두에 두셨을 수도 있지만요. 1코인=1인간으로 치환되는 장면 너무 화폐가치에 대한 이야기같지요. 


2. 과대해석

과도하게 디테일한 호기심과 해석이지만, 드림시티에는 버킷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과 버킷을 들고 다니지 않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로 분류되는 것 같아요. 드림시티 내 건물이 있고 자판기로 판매되는 콘테이너같은 사각형 집과 텐트, 나무 걸이용 해먹을 보면 버킷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은 난민이 아닐까. 

2.1.

드림시티의 자판기에서 뽑힌 듯한 일률적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버킷을 메고, 그 주변을 지나가는 주민들은 색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버킷을 메지 않음. 도시의 주민-난민의 차이일까요. 그런 생각.


3. 떠오르는 영화들

이 작품이 재밌는 지점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더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는 느낌. 영화가 전체적으로 주는 느낌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SF 장르인데, 음악영화는 당연하고 로드무비 장르에 이 작품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착하지 못하고 도시를 헤메이다 거리로 나아가지만 희망이 없는. 이렇게 쓰고보니 1920년대 바이마르 거리 영화들에 더 부합하지 않나? 게다가 너무 재밌는 상징들이 많아 소비에트의 혁명적! 전위 영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소통불가한 장면에서 인물들의 귀가 오그라드는 장면이라거나, 소녀의 환상에서 코인폭발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우왕자왕 흩어지는 장면은 〈10월〉이 연상되기도 하고…이 작품을 저항영화나 혁명영화라고 느끼지 않으려고 애써 시도를 해봤는데 결국 100년 뒤 평등을 위한 혁명이 일어난다면 〈버킷〉이 교과서적인 기념비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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