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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Feb 15. 2024

블랙빈에게 쓰다

33  이야기가 숙성될 시간을 주자

원고에서 잠시 떨어져라. 잠시 숙성될 시간을 줘야 한다. 공기와 접촉해야 한다. 공간이 필요하다. 뿌리를 내릴 시간이 필요하다. 뿌리를 내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뿌리가 땅속 깊이 박히도록 두자. 미량의 미네랄을 찾도록 내버려 두자.(p201)


공저를 기획하고 작년 8월에 책이 출간되기까지 1년의 시간 동안 여자는 자기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여자는 자신의 첫 번째 책인 『엄마 글 좀 쓰고 올게』를 쓰면서 글을 쓰는 것도 그 글을 출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님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 글을 포스팅하거나 발행하는 데까지의 시간이 초스피드하게 이뤄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자는 그 과정이 더딘 사람이다. 한 번 쓴 글을 다시 보기까지 일단 기본 세 시간의 텀(term)을 둔다.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모아 자판을 두드려서 파일에 담아 놓는 과정부터 간단하지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단어를 찾고, 찾아낸 단어가 적절한지 아니면 문장의 맥을 끊어놓는지를 살피면서 문장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화면에서 깜빡거리는 커서의 움직임의 속도부터가 눈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 부담을 피하고자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마구 쓰다 보면 글은 길을 잃고 헤매는 하소연이 되기도 하고, 떼를 쓰는 투정 같은 불평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마라톤을 하듯 앞으로만 달리며 아는 단어들을 모두 쏟아붓는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달려 정해놓은 골인지점에 도착하면 두드리던 자판을 덮는다.


텀의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읽어보면 초고의 글은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어진다. 오르막을 달리던 산길이 어느새 바닷가로 가있고, 바닷가에서 무작정 동네 산책길로 급선회를 했다가 다시 강둑길을 달리는 모양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그 막막한 마음을 다잡고 오르막을  오르던 산길에서 눈에 보이던 풍경들을 하나씩 찾는다. 달리고 걸으며 머물던 마음이 어땠는지 하나씩 살핀다. 거기서 불어오던 바람이 상쾌했는지 아니면 차가웠는지를 헤아려보고, 하늘은 맑았는지 아니면 흐렸는지 되새김하면서 심연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자신 안의 감정들을 정리한다. 정리된 마음으로 숲이 우거진 산을 천천히 내려오는 것으로 처음과는 다른 모양새가 된다.


그리고 바다로 산책길로 강둑으로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마음들은 다른 곳에 모아 두며 다시 뿌리내릴 곳을 찾아본다. 그 뿌리가 기형적으로 뻗어나가지 않도록 미량의 미네랄을 찾는다.


글은 인내심과 영양분이 필요하다. 초고에서 퇴고까지 가는 그 시간을 버텨낼 힘이 필요하고 자신을 지키는 미네랄을 찾아낼 시간이 필요하다. 여자는 글을 쓰며 그 힘과 시간이 곧 자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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