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삶의 비밀을 비우고 덜어내고

3 불면의 밤에 보물찾기

by 블랙빈

크리스마스에 집에 온 청년의 아들과 영화의 전당에서 ‘아바타-물의 길’을 3D를 관람했다.


상영시간이 2시간 72분의 영화를 보고 나온 아들에게 “어땠어?”하고 물었다. “난 그냥 그러네.”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2009년 처음 아바타 봤을 때만큼 감동적이지 않네. 바다보다 판도라 행성의 숲이 더 좋은 것 같아. “ 단호했다. 2D의 영상보다 3D의 영상이 주는 감동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나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아들을 보면서 ‘아! 너도 화성에서 온 남자구나!’했다. 단호했다. 2D의 영상보다 3D의 영상이 주는 감동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나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아들을 보면서 ‘아! 너도 화성에서 온 남자구나.’했다.


감동은 덜해도 가족애가 진한 영화이고 부모의 역할과 가족 구성원들과의 교감과 영혼의 교류를 하고 있는 둘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과 술 한잔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게 입구에서 만난 남편이 물었다. “아바타 어땠어?” 아들이 “아빠가 재미있어할 영화는 아니야.” 여전히 단호했다. 사실 남편은 SF장르의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치킨에 골뱅이에 계란말이에 생맥주 500cc 두 잔과 클라우드 병맥주 한 병을 시켰다. 역시 치킨엔 맥주다. 평소 술을 자주 마시진 않아도 가끔 마시는 나로서 맥주 500cc로 취하거나 힘들어하지는 않는데 어제는 동네 걷기로 만보를 걷고 3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고 와서 그랬는지 집에 도착하니 취기가 올라왔다.


덕분에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조금 찌근거렸지만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잔 것으로 만족한다.


갱년기가 오기 전까지 잠으로 고생해 본 적이 없다.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잤다. 수학여행을 가서도, 대학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도 나의 눈꺼풀은 잠을 이겨본 적이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잠순이로 통했다. 친구들이 밤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면서 술을 마시는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잤다.



’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 같은 정취를 느껴보고 싶을 때나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를 하고 싶을 때는 커피를 마시며 견뎠다. 잠에 굴복해 내려앉는 눈꺼풀을 카페인의 힘으로 버티며 여행의 낭만을 즐겼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잠의 히스토리는 계속됐다. 아이를 재우면서 자고, 아이가 자면 또 자고, 아이가 잠들었다 깨어나서 놀아도 나는 잤다. 한 번은 함께 잠든 아이가 자고 일어나 배가 고파서 우는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자다가 옆집 아줌마의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깬 적도 있다.


잠에 관한 에피소드로 하루종일 수다를 떨어도 될 만큼 잠이 많았던 내가 의도하지 않는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은 갱년기의 힘이었다.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방해하는 큰 원인은 욕심이다. 물욕, 권세욕, 애욕, 거기에 따르는 질투, 모략 이런 것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가 많다.’는 글을 피천득의 『인연』에서 읽으며 갱년기로 사라진 것들에 대한 갈망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나 싶기도 했다.


‘시계추를 멈춰 놓고 잠이 들어 보려고 애쓰는 사람과 자명종 시계를 서랍 속에 집어던지고 다시 잠이 들어 버리는 사람과는 행복에 큰 차이가 있다.’고 피천득 님은 『인연』을 통해 말했다. 정말 잠들어 보려고 애쓰는 시간의 나는 자명종 시계를 서랍 속에 집어던지고 다시 잠드는 시절의 내가 너무 그리웠다.


잠들지 못하는 불멸의 시간들과 싸웠다. 싸우면 싸울수록 말똥해지는 눈과 의식이 나를 괴롭혔다. 잠들기를 포기하고 일어나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술기운을 빌어 잠들었다. 잠들면서 깨워도 못 일어나고 잠에 취해 또 쓰러지는 아침을 꿈꾸며 잤다. 겨우 세 시간. 꿈은 꿈일 뿐이었다. 눈이 떠졌다.


불면의 밤을 와인과 함께 했으나 수면장애의 극복에 술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노선을 변경했다. 긴 잠 대신 짧은 잠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로 방법을 바꿨다.


잠드는 시간으로 욕심을 버리는 대신 깨어 있는 시간에 갈망했던 것들을 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탐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만족했다. 부족하면 몸이 알아서 잠을 자게 하겠지라는 느긋함과 게으름의 도움도 받았다.


근심과 아픔과 슬픔을 잊게 하는 잠이 아닌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상의 소소함을 찾아냈다. 여유 있게 마시는 한 잔의 홍차. 집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 언제나 나가서 걸을 수 있는 산책길. 집 근처 빵집. 자유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읽고 싶고 읽을 수 있는 여러 권의 책. 나를 믿어주는 가족. 내가 사랑하는 가족. 걸어가면 볼 수 있는 바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는 이 공간. 나의 수다를 받아주는 친구.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 마음의 위안을 주는 그림액자 청화와 히스토리. 미덕의 카드...... 찾고자 하면 끝없이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에 찬란한 보물 찾기를 한다.


하늘의 별 대신 일상의 별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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