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책 속의 아름다운 우리말 활용하기
책을 읽다 보면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뜻을 몰랐던 동사와 명사들을 만나게 된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알고 있었으나 몰랐던 동사와 명사뿐만 아니라 아예 처음 듣는 단어들이 많이 보였다.
여북하다, 더께, 표표히, 어둑시근, 줄느런히, 가느스름하다, 두억시니, 허위허위, 노느매기, 고적하다, 추비하다, 괴불마당, 귀살스럽다, 사매질, 흐늑흐늑, 께적지근하다, 육친, 곬, 훈풍, 선용, 명철하다, 야비다리, 하학길, 숫제, 내남없이 등등.
글을 읽어가다 보면 문맥상으로 어떤 뜻이겠구나 알아지는 단어들도 있지만 ‘여러 몫으로 갈라 나누는 일’이라는 의미를 지닌 ‘노느매기’ 같은 단어는 찾아봐야 했고 ‘굳잡히다‘라는 단어는 아예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도 않았다. 몰랐던 단어에서 오는 낯섦보다 아름다운 한글의 표현과 단어에 반가움이 더했다. 거기에 알게 된 기쁨까지 보태져 작가의 문장이 오롯하게 보였다.
고종석의 『문장』에서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 보라는 말에 ‘고즈넉하다, 그윽하다, 설레다, 어머니, 그리움, 익어간다, 보듬다, 넋, 오롯하다, 품.’을 꼽았다. 그런데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다 보니 열 개가 아닌 백 개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읽었던 『싯다르타』에서도 ‘달곰하다, 구득하다, 면려하다, 침잠하다, 청칭하다, 열락하다, 벼리다, 반추하다, 멜랑콜리, 십상이다, 정각, 율기, 달통, 피안’ 등등 낯설지만 아름답게 와닿았던 우리말이 눈에 띄었다. 해서 이 단어들로 『싯다르타』를 읽고 난 느낌을 한 문단 글쓰기로 표현했었다.
어제 먹었던 딸기는 달곰했다. 달곰한 딸기를 먹으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다. 싯다르타가 가고자 하는 길이 구득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의 아버지는 쉽게 그를 쉽게 놓지 못한다. 결국 아들을 보내주기 위해 면려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아버지 집을 떠나 자신의 길을 나선 싯다르타는 침잠의 세월을 보낸다. 청징한 하늘 아래 그의 행보는 열락의 길이고 벼리의 시간임을 보여주며 독자인 나를 반추의 시간에 데려다 놓는다. 싯다르타가 보여주는 정각이 자신의 아들에 대한 사랑 앞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멜랑콜리함을 느꼈다. 싯다르타를 보며 자식을 둔 현자가 율기의 길을 설명하는 것은 궤변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결국 비움으로 달통하는 그를 보며 속세의 것에 매여 있어서는 피안을 얻을 수 없음을 배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참 많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가 한정적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활용하지 않고 사장死藏시키는 단어가 많음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된다.
『싯다르타』처럼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를 통해 알게 된 어휘들로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의 서평을 썼다.
순전히 기억력에 의지해서 쓴 소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작가의 시간들이 더께가 되어 표표히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이 먹을수록 지난 기억들이 줄느런하지 않고 노느매기처럼 갈라지고, 작가 자신과 가족들과 친구들의 기억이 서로 달라 어느 부분에서는 글짓기로 엮어낸 부분이 있다고 했지만 독자가 그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가느스름하게 눈을 떠도 어려운 일이다. 읽다 보면 『나목』의 이경과 어머니가 어둑시근하게 보인다. 숫제 대 놓고 오빠와의 결혼식날 올케 언니가 쓴 화관에서 받았던 감흥을 『미망』에서 울거먹었다고 했다. 여북했던 시절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속의 작가의 삶이 정연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훈풍 같았다면 두억시니 같은 사람들이 건들대는 시절인 해방 후의 삶은 추비 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찰나적 사고의 전환을 겪으며 앞으로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으로 자신에게 내남없이 닥친 공포를 몰아냈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낸 시절을 이렇게 책으로 선용하고 있다.
쓰기를 마치고 앞으로 책을 통해 알게 된 아름다운 우리말로 그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한 권 한 권에서 알게 되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나의 어휘가 풍부해지면 문장도 풍성해질 테니. 배웠으면 활용해서 익혀야 하는 것이 배움의 자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