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우먼의 리딩과 라이팅

3 슬픔이 주는 기쁨

by 블랙빈

세상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고요한 이 시간. ‘집에서 우울하거나 따분할 때 가볼 만한 곳이 공항이다.’라고 말한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을 보면서, 우울하거나 따분할 때 발레를 감상하듯 비행기를 감상하는 작가처럼 우울감과 따분함을 털어내기 위해 나는 어디를 가나?를 차분히 되짚으며 구경과 감상의 차이부터 살폈다.


구경: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봄. 흥미나 관심을 일으키는 대상.

감상: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 그 깊이를 음미하고 내용을 이해하며 즐기는 일.


구경과 감상은 그 뜻이 다르다. 뜻이 다른 만큼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고, 태도가 다르니 관찰하는 대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슬픔이 주는 기쁨』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감상하는 방법은 아주 구체적이다. 영원한 이동성을 가진 거대한 물체에 생명이 부여되는 시점부터 정체와 속박의 답답함 대신 자유를 수용하고 날아오르면서 장착한 속도의 지속성과 터보팬 엔진의 운동성으로 유지되는 고고함까지 세세하게 표현된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비행기는 물체가 아닌 살아있는 고대동물 같다.


민첩하고 침착성을 지닌 그 동물이 행하는 모든 행위와 행동의 양상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을 털어낸다. 그의 말대로 새로운 시점은 풍경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한다. 눈이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 머릿속의 지식들도 다른 사고로 물체를 인식한다. 비행기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된다.


이처럼 구경하는 것과 다르게 감정을 담아 감상하듯 보기 시작하면 익숙한 것들 속에 숨어있던 것을 찾게 된다. 우리 눈에 안 보였던 것이지 없었던 것이 아닌 것이다. 찾아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작았던 것이 커 보인다.


일상의 삶도 그러하다.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보인다. 치열함과 비애가 얽히고 긁힌 일상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아 희망과 사랑을 보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애개 이것이 기쁨이야? 겨우 이 정도가 행복이야? 하며 소소하고 별거 아닌 것으로 보였던 것이 더없이 소중한 희망과 귀중한 사랑으로 깊게 자리 잡게 되고 특별하게 보인다.


작가의 권고인 공항이 아닌 집 근처 카페에 앉았다. 창가자리에 오늘의 커피 트리뷰드 블랜드 한잔을 시켜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줄리안 오피의 그림을 보듯이 감상했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는지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고, 4월이 되고도 불어오는 바람에 찬 기온이 느껴져서인지 얇은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느리게 혹은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각자 삶의 속도처럼 여겨진다. 개성을 담고 걷는 그들의 걸음이 자신의 삶의 궤적을 따라 모양을 달리해서 움직이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그 걸음들을 따라가다 보니 우울한 생각이 든다.


그 걸음을 옳은 방향으로 내딛고 있는지, 자신이 원하는 뱡향으로 걷게 해주는 것들이 있는 곳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 아니면 어딘지도 모르고 걷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세상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 무엇보다 나는 옳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 걷는 방향이 옳은 것이 맞는지. 그리고 내 방향을 알고 걷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금방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이 정처 없이 흘러간다. 마음을 어지럽힌다. 우울한 생각이 공허함을 몰고 온다. 감상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감정일 수 있다. 가라앉는 감정을 털어버리려 카페 밖 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나무들을 본다.


영혼의 쉼터가 되어주는 그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며 연초록의 새순을 틔우는 나무에서 다시 희망을 찾는다. 나목에서 순수함을 회복해 가는 이 계절의 나무가 갖고 있는 기대에 부푼 생동감을 바라보며, 태양의 햇살과 자연의 바람과 구름이 허락하는 비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서 삶의 활력을 얻고 고마움을 배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에게서 방향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지금의 이 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 먼저임을 배운다.


오늘도 나의 우울감과 따분함을 털어주고받아주는 것이 자연임을 깨닫는다.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찾고 나무를 보며 지금의 자리에서 어디로든 가도 괜찮다는 용기를 얻는다. 『슬픔이 주는 기쁨』으로 내가 걷는 방향이 내 방향이고,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는 믿음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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