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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Jun 27. 2023

올드우먼의 리딩과 라이팅

12  따라 걷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시간의 길을 따라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느닷없이 아픈 아이

나라를 지키러 바다로 간 아빠

차가 있어도 운전이 안 되는 무면허의 엄마

둘러업고 나가도 택시가 없는 소도시의  밤

울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 시각

그 길에 멈춰 선 승용차 한 대

우리를 병원에 데려다준 그 사람이

내 눈엔 비오 성인이었다


나도 나를 나로 믿으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나로 믿으며 살아가기에 자주

아이가 아프고 다쳤다

왜 아이는 나 혼자 집을 지킬 때

더 많이 아픈 건지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하느님의 시간 말고는


겁 없는 약속을 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해주시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해보겠노라고


일곱 살 때까지

자주 아파 넘어지던 아이가

하느님의 시간이 시작된

여덟 살이 되면서 넘어지지 않았다

단단하고 굳세어졌다

약속을 지키느라

시키는 일은 할 수 있는 한 다 했다

하지 않으면

아이가 다시 휘청일까 무서웠다

그러다 내가 쓰러졌다


그제야 알았다

나를 묶어 놓고 매어놓은 것이

약속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놓은 족쇄라는 것을

사랑으로 내민 손을 계약으로 여겼음을

그 약속을

억압이라 여기고 뛰어다녔던 시간 동안

제대로 그 길로 가지도 못했다는 것을


내민 손을 잡고

다시 시간의 길을 걸으며 알았다

마르타의 행동이 아니라

마리아의 마음이면 된다는 것을

뛰지 않고 믿음의 보폭으로

조용히 걷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그 시간의 길을 가는 데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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