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이 듦이 죄는 아니잖아
셰익스피어를 통해 만난 리어왕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읽은 『인생의 역사』에서 소개한 ‘작은 큐브로 만든 집’ 영상을 보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래쪽에서 위로 점점물이 차오르는 일이며 그렇게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지난 시간들은 수몰되는 집처럼 그 형태 그대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막을 수는 없고 다만 잠수하듯 상기해 볼 수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인생의 역사 p233)고 했던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가며 주인공이 살던 집에 물이 차오르고, 그 차오름에 따라 새로운 큐브 집을 지어 올리면서 그전에 있던 집과 문건들이 물에 잠긴다. 가라앉음으로 보이지 않고, 잃어버리고 잊게 되는 것이 추억이 되어 수몰된다.
생각을 하면 그다지 슬픈 것은 아닌데 영상을 보다 보면 왠지 모를 호젓함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혼자 남아 지나온 시간을 고요하게 추억하며 수몰된 흔적들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가라앉고 그 내려앉음으로 가슴 한 편이 아리고 시리다.
‘작은 큐브로 만든 집’ 속의 말없는 주인공과 달리 ‘날 참아줘야 해. 제발 잊고 용서해라. 난 늙고 어리석다.‘(민음사. 리어왕 p154)며 늙고 어리석음이 죄는 아니라고 몸으로 외치는 리어를 보면서 그에게만은 늙음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처럼 느껴졌다. 맑았던 눈이 흐려지고 열려있던 귀가 닫히는 모습의 늙은 왕은 자기 안의 소리만 듣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은 죄로 자신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으로 초라해지고 비참해졌다.
사랑한 것이 죄는 아닌 것처럼 늙음이 죄는 아니다. 그럼에도 리어의 늙음이 죄처럼 형벌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고. 어른 같이 떼쓰는 어른도 있다고. 내가 꼭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해서 청춘이 끝난 것도 아니고. 어른이라고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 그러니 앞으로 어른인 척하지 말자고.’(p80) 『너의 사회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의 작가 이청안 님의 문장이 답처럼 느껴졌다.
아니면서 그런 ‘척’을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은 아님에도 나이를 먹은 것으로 어른인 ‘척’을 하고 싶고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세상의 변화에, 시간의 힘에 얻은 것이 ’ 늙음‘ 밖에 없다는 학습된 무력감이 만든 ‘척’ 하기가 ’ 늙음‘을 죄로 만든다.
청춘의 시간을 지나면서부터 맞이하는 나이 듦의 시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생각과 행동은 각자의 몫이다. 적응하며 동화되는 것으로 갈 것인지 길들여지면서 갈 것인지 아니면 의지를 가지고 투쟁하며 대응할 것인지. 스스로가 가진 힘으로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고 선택이다.
활력이 넘치는 열정적인 아름다움의 시간은 지났다. 이제 나이 들어가는 시간에 중심을 두고 격렬하게 보낸 시간의 흔적이 내면의 아름다움이 되어 외면의 ‘아리따움’으로 나타나길 바란다.
골드문트가 여행에서 돌아와 거울을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청춘과 건강, 자신감, 불그스레하던 얼굴과 형형하던 눈매가 사라지고 이전에 비해 더 늙고 약하고 초췌해진 모습을 보면서도 만족스러워하던 그 모습, 놀랍도록 편안한 풍모에 마음의 평정과 초연함까지도 느껴지는 모습으로 마음을 비우고 보기 좋게 늙어가는 노인의 기품있는 모습이 나에게도 엿보였으면 좋겠다.
늙음이 죄처럼 보이지 않도록 근사하게 나이를 먹고 싶고 곱게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