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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Aug 22. 2023

블랙빈에게 쓰다

8 영혼의 과제-누군가와 신성한 계약을 맺었는가에 대해 쓰라


”다음 생에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라고 수호천사가 물어온다면 무엇을 배우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처럼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작가의 아들처럼 희생자가 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할까. 여자는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키우며 출동과 비상으로 집을 비우는 남편으로 아들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여자는 하느님의 시간을 걷기로 결심하고, 그 시간으로 가기 위해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 날 아들의 건강을 기도하며 겁 없이 성당에서 해야 하는 봉사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덜컥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할까 봐 ’ 예스마담‘으로 살았다. 단 한 번의 약속으로 아들의 건강을 평생 보장받은 것으로 여겼다. 마리아가 아닌 마르타의 삶에 순응했다. 힘들지 않았다.


서로가 약속을 지킨 덕분에 아들은 건강하게 자랐고 지금도 건강하다.


남편의 발령으로 거문도로 이사를 하면서 가고 싶으면 언제든 그냥 갈 수 있는 성당을 갈 수가 없게 됐다. 그곳은 공소(본당보다 작아 본당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의 천주교공동체)조차 없었다. 해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하신 주님의 몸인 영성체를 매주 모실 수가 없었다. 겨우 한 달에 한 번 여수 서교동 본당 신부님께서 방문하시는 날에만 영성체를 모실 수 있었다. 늘 먹던 빵을 먹지 못하는 갈증은 컸다.


일 년을 보내고 섬을 떠나면서 제일 좋은 기도가 ‘미사’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에 자극받아 육지에서 생활하면서는 평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미사에 참례했고 주님이 주시는 빵을 달게 먹었다.


성령의 은사는 이슬비에 옷 젖듯이 보다는 소낙비를 맞는 일이라고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맞게 되는 것이라는 말에 여자는 소낙비를 맞기 위해 매일 성당에 갔다. 그것이 은총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평화로웠다. 그 평화가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 여기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감사하는 만큼 기도하고 봉사했다. 그런 시간이었다. 여자에게 하느님의 시간을 걷는 일은 약속을 지키기 위한 봉사와 헌신의 길이었다. 누구나 다 그 길을 그렇게 수행의 길이라 여기며 걷는다 여겼다.


여자는 몰랐다. 하느님의 시간에 내리는 이슬비와 소낙비가 믿음을 지키라는 언약의 비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는 흠모의 비였음에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모든 비를 맞으며 가는 길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가벼워야 했음에도 알지 못했다. 신앙은 무거운 거라고 혼자 단정하고 그 무거움이 여자가 져야 할 ‘십자가’라 여겼다.


무거움에 지치고 비에 젖어 늘 축축했던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걸음이 아닌 다른 이들의 걸음을 보면서 알았다. 여자가 걷는 이 길이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듯이 무작정 전력질주하며 가는 길이 아님을. 깨지고 넘어지며 고행하듯이 걸어야만 하는 길이 아니라 약속의 땅으로 가는 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은혜의 한 걸음이라는 것을. 주님과 한 그 약속이 계약이 아니라 사랑의 악수였다는 것을.


하느님의 시간으로 천천히 내딛는다. 하루하루 그 걸음을 사랑으로 걷는다. 비로소 여자는 수호천사가 ”다음 생에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라고 묻는 말에 다음 생에는 ‘제대로 걷는 법을 배우고 싶다 ‘고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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