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당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 대해 쓰라-그 사람이 나일수 있다
여자와 남자는 1990년 4월 19일 친정엄마 친구분의 소개로 만났다. 처음부터 여자는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알았다.
남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인천 2함대 소속의 배에서 근무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사람이었고, 여자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선을 보는 날 남자는 옅은 파란색 재킷에 흰 와이셔츠에 회색의 정장바지를 입고 있었고, 여자는 청록색의 마소재의 가벼운 바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스물아홉의 아저씨였고 여자는 대학생의 티를 벗지 못한 스물네 살의 생기 발랄한 아가씨였다.
결혼을 결정하기 전까지, 5개월 남짓 만나면서 부산과 인천이라는 거리의 제약으로 얼굴을 본 날은 채 열흘도 되지 않았다. 만나는 시간보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막상 얼굴을 마주 대하면 부끄럽고 어색했다.
만나고 일 년 정도 연애를 생각했던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세 번째 만나는 날 결혼을 하자고 했다.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로 시간을 벌었다. 우리를 소개했던 분으로부터 남자 쪽에서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여자의 엄마는 여자를 데리고 철학관엘 갔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여자를 위한 엄마의 처방전이었다. 그날은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지만 결혼날짜가 잡히자 친정엄마는 소개를 받으러 가는 전날 밤의 예지몽으로 이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질 것을 미리 예감하셨다고 했다.
찾아간 철학관의 철학자는 여자의 사주와 남자의 사주가 어떤 사람을 만나도 무던하게 사는 팔자를 타고났으니 세상 사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자는 관이 있어 군에서도 별 무리 없이 잘 해낼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철학자의 말이 감미롭게 들렸다. 인생 뭐 별거 있겠나 싶었다. 이왕 할 결혼이라면 앞으로의 삶이 힘들지 않은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냥 하자로 마음이 굳혀졌다.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각자의 환경에서 24년과 29년을 살던 여자와 남자가 만나 시간을 보냈던 찰나의 연애는 이상이었고, 결혼해서 하루 24시간 중 12시간을 붙어 있는 생활은 현실이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치약 짜는 것부터 젖은 욕실 슬리퍼 세워 말리는 문제로 말다툼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별거 아닌 일로 서로 열내지 말자며 화해했다. 저녁 퇴근 때 양말 뒤집어 벗지 말고 군복은 옷걸이에 걸라는 잔소리에 또 싸우고, 화해하기 위해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서로가 틀렸다며 또 싸우고 고치겠다는 말에 다시 화해를 했다.
그런 시간이었다. 결혼하고 바로 생긴 아이로 서로를 제대로 알아갈 시간이 부족했다. 급한 마음에 빨리 알아가기 위해 시도했던 대화가 결국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그 말꼬리가 이어져 또 싸웠다가 결국 말꼬리 끝에서 화해를 하는 꼬리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싸움이 계속됐다.
서로 알아가고 맞추기 위해 부딪히고 부닥쳤다. 모르니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했고 틀렸으니 고쳐야 한다고 여겼다. 틀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주고받아내기까지 인고의 삼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던 남녀가 만나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은 밥 짓는 일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다. 지금에야 쿠쿠압력 밥 솥으로 쉽게 밥을 하지만 그 솥에 밥을 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다. 서로 봐주고 참아야 하는 시간, 열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도 사랑이라는 눈으로 서로를 볼 수 있는 배려와 수용을 그 안에 스며들고 녹아들게 하기 위한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자와 여자와는 다른 남편은 지금도 함께 그런 시간 속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