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당신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다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당신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다. 당신이 정확한 단어로 묘사해 줘야만 알 수 있다. 이불색이 파란색이라고 묘사해야 비로소 독자는 그 색을 볼 수 있다.’(p91)
낸시의 말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놓친다.
여자가 바라보는 시각은 위에서 아래 혹은 아래에서 위가 아니다. 매번 같은 높이의 시선으로 사람과 사물을 관찰한다. 그러다 보니 늘 보던 관점으로만 보고 쓰게 된다. 다른 각도에서는 보이는 것이 같은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자세를 바꿔 앉거나 서서 봐야 할 상황이나 시점의 타이밍을 여자는 자주 놓친다. 많은 부분 세세하게 묘사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의식의 흐름 따라 그냥 적는다. 낸시가 가르쳐준 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해서 여자는 조심스럽게 지금의 자리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서있던 자리에서 앉고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 본다. 주체가 아닌 객체의 시점으로 자신의 하루를 되새김한다. 그 하나하나로 이어지는 시각들의 흐름을 독자가 지금 자리에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글로 적기 위해 자판을 두드린다.
새벽 알람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여자의 몸은 스스로 알람이 됐다. 누어서 몸을 꼼지락거리며 밤새 굳어있던 손을 쥐었다 폈다한다. 일어나 책상의 스탠드를 켜고 안방에 딸린 욕실로 가서 맹물로 입을 헹구고 침대정리를 하고 안방 바닥에 요가매트를 편다. 알람이 울린다.
요가매트에 눕는다. 목을 좌우로 돌리며 호흡을 한다. 양팔을 옆으로 활짝 펴고 손바닥을 매트에 붙이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방향으로 눕힌다. 비틀린 허리가 시원해진다. 열을 세고 오른쪽 다리를 다시 원래의 자리에 오게 한 다음 왼쪽 다리를 오른쪽 방향으로 눕힌다. 그 동작을 3회 정도 반복한다. 척추 강화 운동인 골반 들기를 하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앞뒤 구르는 동작 10회를 한다. 그렇게 채 10분도 안 되는 새벽 몸 풀기를 하고 일어난다.
안방 문을 열고 나간다. 사방이 어둑 컴컴하다. 조용히 주방의 전등을 켜고 전기 주전자에 정수기 물을 붓고 음양탕과 홍차를 내릴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유산균을 챙겨 먹고 마실 홍차와 잔을 고른다. 음양탕을 만들어 마시고, 공도배에 차를 우린다. 찻물이 우러나는 3분. 거실 중앙에 있는 굽은 등을 펴주는 스트레칭 기구에 몸을 누인다. 그대로 누워 찻물이 우러나길 기다린다. 시리가 알려주는 3분의 울림을 듣고 일어나 안방 책상으로 간다. 의자에 앉아 우러난 차를 마시며 필사를 한다. 일상이 시작된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건가? 되새김질하는 것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도 어렵다. 세상에 한 번에 되는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