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통찰-인생을 바꾼 혹은 바꿀 만한 통찰에 대해 쓰라
신이 주신 재능이 영광이 될 수도 혹은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고전문학을 통해 알게 된 일을 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여러 질문을 했다. 그중에서 ‘부모란 무엇인가?’ ‘아이가 가진 재능을 자신의 것인 것처럼 마치 자신들이 만들어 준 것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부모인가?’, ‘어른들은 재능이 있는 아이를 키우며 그에 상응하는 보람을 느끼고 만족을 얻어야 하는 존재들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며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을 되새김질 한다. 한창 피어오르는 꽃다운 나이의 한스를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만든 것이 자신을 포함한 어른들임을 자각하는 인물은 동네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 뿐이다.
또 다른 고전 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에서 난산을 겪는 딸 린에게 타오 치엔은 ‘이건 속도전이 아니라 인내심 싸움’이라며 지쳐가는 딸에게서 침착함을 이끌어 낸다. 그 모습을 보며 ‘내 삶에서 나를 인내심 싸움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누구인지?’, ‘삶에서 속도전이 아니라 인내심 싸움을 했던적은 언제인지?’라는 질문에 ‘나를 인내심 싸움에 끌어들인 사람은 아들이며, 분만이 아니라 육아가 속도전이 아닌 인내심 싸움이었다.’라는 답을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고전을 읽으며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한스의 아버지가 한스를 유능한 인재로 만들기 위해 속도전으로 키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자각하며 자랄 수 있도록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타오 치엔 같은 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 그가 가진 재능이 찬란한 영광이 되도록,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것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도록 기다려 줬다면 어땠을까? 끊임없는 질문이 또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고전의 문학작품을 읽으며 얼개가 되어 연결되는 것들이 여자로 하여금 사고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통찰의 시간을 만나게 한다.
질문에 답을 찾으며 여자는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배를 가르려는 어른들의 눈초리와 눈총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냈을까.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츠리고 껍질 속에서 웅크려 있던 자신을 무엇으로 끌어냈을까. 왜 결국 한스를 자신처럼 끌어내지 않고 수레바퀴 아래 깔려 죽게 했을까.’라며 답이 아닌 또 다른 질문만 해댔다. 끝내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는 한스를 통해 어른들의 속도에 쫓아가지 못하는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실용적인 해답은 자살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것인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을 선물처럼 남겨준 것으로 한스를 해방시킨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영화 <더 썬>의 아들 니콜라스처럼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탓에 스스로 그 짐을 내려놓은 선택을 한 것인지.
허공을 향해 쏘아댔던 질문의 화살이 다시 되돌아 자신에게 쏟아져 내린탓에 온갖 질문만 갖게 된 여자는 그 답을 찾기위해 가졌던 사유의 시간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 시간에서 만난 깊은 통찰의 눈으로 자신은 자신의 아이가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어른이었나를 되짚었다. 결국 여자도 인내심이 아니라 속도전의 싸움을 하게 만든 엄마였다는 자각을 한다.
책의 힘, 고전의 가치가 이런 것인가 새삼 느끼는 시간이다. 반성을 한다. 설령 그 반성에 힘이 없더라도 반성한다. 지난 시간을 복기하며 속도전에서 스스로 살아남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고맙다는 감사의 문자를 한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아들의 그 길을 응원하며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엄마가 되기 위해 손을 내민다. 자신 안에 감춰진 최고가 아닌 최선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