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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Oct 03. 2023

블랙빈에게 쓰다

18 당신의 이야기는 많은 변곡점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변곡점들을 떠올린다. ‘즐거움에서 고통으로, 그리고 다시...’를 반복했던 순간을 더듬는다.


매 순간이 변곡점의 시간이다. 녹음이 우거진 숲 길이나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모래사장을 걷는 시간보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골목길을 걸어가는 시간이 더 많다.


구체적으로 쓰려고 하니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럽다. 여자 역시 낸시의 로드아일랜드 방문기처럼 희극으로 시작된 여행이 비극으로 마무리된 적도 있고, 기념일에 말 한마디로 촉발된 서운함이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었다.


상쾌하게 눈을 떠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해 놓고  전화 한 통에 우울모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출근길에 급하게 나가다가 주차장 기둥에 차가 긁히는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운동을 하러 갔다가 발목을 삐기도 하고, 무리한 연습으로 손목이나 무릎에 깁스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요령 없이 골프채를 휘두르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경우도 있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다 손가락이 칼에 베이기도 하고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멀쩡하게 학교에 간 아이가 아프다며 조퇴하기도 하고, 저녁까지 잘 먹고 자고 일어난 아이가 고열에 나기도 한다.


삶에서 의도하지 않게 발생하는 수많은 일로 겪게 되는 변곡점의 순간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발발하는 변곡점의 순간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게 된다. 새벽마다 묵상하고 필사하며 다졌던 마음 챙김은 그 순간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허물어진다.


그럼에도 매일 새벽 짧은 기도로 갖는 묵상과 필사로 얻는 마음 챙김의 순간을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져놓았던 마음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 허물어지더라도 다시 세울 힘을 얻기 위해 또 무너짐으로 겪게 되는 고통의 순간에서 오래 머물지 않기 위해 마음 챙김의 시간으로 나를 다잡는다.


삶에서 변곡점의 순간이 없다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을 것이다. 유리병 안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겠지만 변화가 없는 삶. 그래서 삶은 평온하겠지만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삶. 불행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간이지만 인간성은 없는 존재로 자아가 없는 ‘나’로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무감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런 평온을 바라진 않는다.


바다 위의 태풍같은 풍랑까지는 아니지만 호수의 출렁거림 정도로 삶에서 삶으로 겪는 것들로 생겨나는 변곡점의 순간이 있는 지금의 삶이 좋다. 그 변곡점의 순간. 누구나 다 아프다. 아프니 청춘이다. 청춘으로 아파하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아픔이 무뎌지고, 상처가 아물어가며 생겨난 지혜로 지금처럼 익어가고 늙어가고 싶다. 그렇게 생의 주기를 잘 준비해서 맞이하는 올드우먼의 삶으로 살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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