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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Oct 10. 2023

블랙빈에게 쓰다

19 우연을 그냥 지나치지 마라


디팩 초프라는 우연과 운명을 통합해 ‘동시 운명성’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이것을 통해 우리가 우주의 근원적 지성을 자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연이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당신이 그 순간에 충실하면 그런 우연들이 온전히 당신을 지지하기 위해 설계된 작은 기적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p116)


우울증으로 우연히 갱년기가 온 것인지 아니면 갱년기로 우연히 우울증이 온 것인지 여하튼 이 둘은 세트로 여자에게 배달됐다. 우연히 여자 집으로 배달되어 온 것들과 지내느라 집에만 있었다. 때마침 팬데믹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일시에 칩거상태가 된 덕에 여자의 방콕모드는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였다.


평소 전화로 하는 수다보다 톡이나 문자를 애용하는 손가락 수다로 대부분의 소식을 하는 터라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성대의 이상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집에 있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가 아닌 혼자 있는 시간에 만족했다. 그 시간을 책과 함께 하고 책이 지겨우면 OTT로 드라마나 영화를 챙겨봤다. 누구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 했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굳이 힘내서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속삭이듯 말해도 다 알아듣고 설령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가 아니라 내 마음 내가 알도록 살뜰히 살폈다. 살피며 찾았다.  ‘혼자서도 잘해요.’를 하기 위한 자신만의 시그널.


여자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시그널로 글쓰기를 택했다. 세 줄짜리 단문을 쓰고 단상을 쓰면서 알아가는 것이 많아졌다. 무슨 감정인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무엇 때문에 생긴 감정인지. 그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참을 것인지 표출할 것인지. 그렇게 글쓰기가 자신을 알아차리는 도구가 되고 무기가 되었다.


무기를 장착하니 용기가 생겼다. 하고 싶은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할 수 있어해 보니 재미있고, 재미가 있으니 좋아졌다. 그렇게 우연으로 배달되어 온 갱년기 우울증으로 운명 같은 글쓰기를 만났고, 글쓰기로 자신을 돌보며 ‘동시 운명성’의 기적을 깨달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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