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전문가가 되지 마라: 전문가가 돼라
당신이 모르던 것을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독자는 당신과 함께 뭔가를 배울 기회를 얻는다. 당신은 전문가가 아니다. 학생이다. 독자는 바보 취급당하지 않을 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p121)
사람들은 ‘주류와 비주류’라는 말로 편 가르기를 너무나 쉽게 한다. 그로 인한 불이익이나 불평등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행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한다. 어떤 것에 대해 이런 식의 편 가르기는 찍먹과 부먹, 민초파와 반민초파 같은 소소한 것에서부터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경제적 맥락까지 이어진다.
가끔 여자는 스스로 ‘나는 그 경계에서 어디쯤일까?’ 스스로 줄을 세워보기도 한다. 정해진 경계의 안과 밖을 주관적인 잣대로 점치고 재보는 일이 단순한 것에서는 재미있고 복잡한 것에서는 모호해진다. 이쪽저쪽을 정하라는 누군가의 요구가 더해지면 여자는 자신이 주류가 맞는지 비주류가 맞는지를 가늠하기 더 어려워한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했다.’ 거나 ‘비주류에서 주류로 떡상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더더욱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를 헷갈려한다. 여자는 선택에 앞서 그 단어가 가진 무게에 짓눌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주류가 좋고 지키는 것이고 비주류가 나쁘고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류에서 비주류화 혹은 비주류의 주류화는 어떻게 보면 익숙한 일상이다. ‘주류’라는 것이 사람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닌 그 문화나 사상 같은 본질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사람의 생각과 취향은 바뀔 수도 있으니 주류에서 비주류로 비주류에서 주류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류는 자신이 정하기 나름이다. 설령 자신의 성향과 취향에 반대되는 사람을 비주류라는 범주에 둔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성향과 취향의 선택일 뿐이다. 그 선택이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경계의 선일뿐 벽이 아니다. 생각을 키우고 또 사고의 전환을 하며 그 선을 넘나드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시대이다. 경직된 사고로 내편 네 편을 가르며 벽을 세우고 넘어오지 못하게 철책을 쌓아둘 필요는 없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므로.
여자는 오늘도 그어진 선 앞에 서 있다.